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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폭락 유발” 금지 당한 공매도… “과열 잡는 효자” 반론도[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08-26 03:00:00

두 얼굴의 공매도, 재개시점 공방




김형민 경제부 기자

“공매도(空賣渡)에 질렸다. 보유 주식을 전부 매각하겠다.”

바이오기업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은 2013년 4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매도 세력에게 악용당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 회장은 “지난 2년간 432거래일 중 412일 동안 공매도가 진행됐다. 악성 루머나 허위 사실이 자본시장에서 유포되고 반복 재생산됐다. 한국은 공매도에 대한 감시 감독 기능이 약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회장이 정면 비판했던 공매도 제도는 올해 다시 한시적으로 금지됐다. 정부는 3월 1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증시 폭락을 막기 위해 6개월간 공매도를 금지했다. 이달 15일이면 이 금지 조치가 끝난다. 상당수 개인투자자와 정치권 일각에선 이참에 공매도를 폐지하거나 금지 조치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매도에는 투기 수요와 거품을 빼는 순기능이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26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와 27일 증권업계 간담회를 열고 공매도 금지 조치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 “공매도는 ‘개미지옥’, 없으면 박스권 돌파”

공매도는 말 그대로 ‘없는 주식을 파는 것’이다. 앞으로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보이는 주식을 기관 등에서 빌려 판 뒤 결제일이 되면 해당 주식을 마련해 돌려주는 식으로 차익을 얻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가 예상대로 떨어지면 싼값에 주식을 매입해 돌려주면 되기 때문이다.

개미투자자는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공매도의 첫 단계가 주식을 파는 행위이기 때문에 매도 물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멀쩡한 종목도 공매도가 쏟아지면 주가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매도 논란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셀트리온의 경우 2018년 1월 주가가 37만4000원으로 역대 최고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이며 올해 3월 17만∼18만 원 선을 오갔다. 공매도 금지 직전인 3월 13일 셀트리온 주식의 공매도 비중은 9.35%로 조사됐다. 전체 코스피 종목 중 가장 많은 공매도가 이뤄졌다. 한 주주는 “공매도만 없다면 주가가 30만 원을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 이후 셀트리온 주가는 올랐을까. 공매도 금지 직전(3월 13일) 셀트리온 종가는 17만500원이다. 24일 현재 종가는 31만 원이다. 주가가 77.1% 오른 셈이다. 공매도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던 다른 바이오주 주가도 이 기간에 상승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 대표는 “공매도 때문에 우리 증시는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처럼 13년째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기관과 외국인이 공매도를 주도해 개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개미지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개미들의 공매도 거래 비중은 2%가 안 된다. 개인이 참여하지 못하는데, 반대로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 불합리하다”고 했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개인투자자 공매도 비중은 25%에 이른다.

○ “공매도와 주가 등락 연관성 찾기 어려워”

공매도 반대론자의 주장과 달리 학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선 공매도와 주가의 상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증권이 올해 6월 공매도 금지 전 석 달(1월 2일∼3월 16일)과 금지 이후 석 달(3월 16일∼6월 12일)을 비교한 결과 의약품 업종은 공매도 금지 조치 이후 공매도 비중이 92.2% 감소했다. 증권사 등 시장 조정자에 대해선 공매도 금지 예외를 뒀기 때문에 일부 공매도는 있었다. 이 기간 의약품 주가는 평균 76.5% 올랐다. 반면 전기전자 업종에서 공매도 비중은 93.7% 줄었지만 주가는 11.1% 오르는 데 그쳤다. 코스피 공매도 거래 비중 상위 10개 종목의 공매도 금지 이후 평균 지수 상승률은 18.8%로 코스피200(20.9%)을 밑돌았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는 “공매도가 주가 거래 변동성에 미치는 효과를 실증적으로 추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주가 상승이 공매도 금지 효과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최근 주식 시장 상승 원인은 공매도 금지가 아니라 풍부한 유동성으로 새로운 증시 투자자가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는 역으로 공매도가 재개된다고 해서 주가가 급락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전망의 근거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입장에서 공매도라는 ‘헤지(hedge)’ 수단을 바탕으로 현물 시장에서 순매수에 적극성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실물과 증시가 따로 움직일 때는 공매도의 순기능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격 조정 기능을 가진 공매도가 증시 과열을 진정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업체 수젠텍의 주가는 이달 10일 5만1400원으로 연초(5550원)의 약 9배로 뛰었다. 하지만 2분기(4∼6월) 영업이익이 증권가 예상인 1000억 원보다 턱없이 낮은 200억 원에 머물렀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이 회사의 진단키트 승인을 거절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11일 3만9300원으로 폭락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수젠텍의 급락은 공매도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공매도가 가격 조정을 통해 주가의 거품을 어느 정도 빼놓으면 개인투자자의 손실도 다소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올해 2월 내놓은 ‘국내 주식시장의 공매도와 주가 위험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기업의 건전성과 투명성이 낮을수록 공매도로 인한 주가 하락 위험이 더 크다”고 주장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임현일 부연구위원은 “공매도의 순기능을 배제하고 규제를 단순히 강화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연장 후 재개 시점 고심하는 정부

해외는 어떨까. 해외 증시에서도 공매도는 투자 위험을 줄이는 전형적인 헤지 투자수단으로 본다.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폭락하자 프랑스 이탈리아 대만 등에서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다가 거의 대부분이 다시 허용했다. 미국과 일본 등은 코로나19 사태에도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다.

개방 경제인 우리 증시만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은 글로벌 자금이 유출되는 결과를 낳아 ‘득보다 실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터키는 2019년 10월 정치적 문제로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그런데 올해 6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신흥국지수에서 터키를 제외하고 최고 두 계단 강등한다고 경고했다. 터키 정부는 다음 달 공매도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고은아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 상무는 “공매도 금지 이후 일부 외국계 투자 회사는 헤지 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 시장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매도 논란이 정치권으로 번지면서 공매도 재개 시점을 잡아야 하는 정부의 입지가 좁아졌다. 야권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달 13일 “공매도 금지 조치를 6개월∼1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 일부 의원은 공매도 금지 조치 연장은 물론이고 완전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최대 6개월 연장 등 다양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0일 국회에서 “지금 상황을 봐서는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한국거래소가 서울대에 의뢰한 용역보고서는 3개월·6개월 연장, 제한적 연장(일부 종목만 금지) 등 연장에 무게를 둔 시나리오 3가지를 제안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공매도 금지 연장 조치를 바로 연장하는 방법, 연장한 다음에 단계적으로 (재개)하는 방법 등 여러 안을 놓고 논의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으로 단계가 있을 수 있고, 시장으로 단계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장하더라도 명확한 재개 조건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시장의 최대 적은 불확실성”이라며 “시장 참여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전체 공매도 투자 비중 중 99%가 외국인과 기관에 집중된 만큼 개인에게도 공매도 투자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 위원장은 “(개인투자자들의 접근이 제한되지 않도록) 이번에 제도 개선을 할 때 저변을 늘리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개인에게 공매도를 허용하는 것이 기회 균등인지, 오히려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인지 자신이 없으니 최대한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선을 그었다.

김형민 경제부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