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헌의 신선로.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평소 잘 접하기 힘든 여러 가지 전을 부치는 것이 첫 번째였다. 종잇장같이 마른 석이버섯을 물에 불린 뒤 잘게 다져 달걀흰자로 지단을 부치고 신선로 그릇에 맞게 직사각형으로 반듯이 자른다. 10여 가지 신선로 재료 중 겨우 하나 완성이다. 미나리 줄기를 꼬치에 가지런히 꽂아 밀가루, 달걀을 입혀 노릇하게 지진 뒤 미나리 단면이 보이도록 썬다. 이렇게 또 하나 완성. 마침내 재료 준비가 끝나면 드디어 요술램프 같은 신선로에 가지런히 담고 육수를 붓는다. 한껏 멋을 낸 재료를 결국 한 냄비에 몽땅 넣고 끓여 먹으니 결과는 좀 허탈한 ‘전탕’이다. 당시 초보 강사가 신선로의 조리법만 전달했으니 이 비효율적인 음식을 왜 배워야 하나 답답해하는 수강생도 더러 있었다.
어느 날 정성과 인내의 요리인 신선로를 쉼 없이 내온 전통 한정식을 만났다. 18년 전 문을 열 때부터 오너와 뜻을 맞춘 ‘봉래헌’ 이금희 셰프는 신선로의 바탕이 되는 육수 맛을 내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 왔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재료가 육수 안에서 조화를 이뤄야 하기에 맛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생새우를 구워 정성스럽게 우려낸 이 셰프의 개운한 신선로 육수는 전통 한식의 깊이와 번거로움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맛이다.
요즘은 한식 분야에서 독특한 상차림을 구현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한식인지 양식인지 경계가 모호한 창작음식을 해야 세련된 셰프인 양 보이게 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럴 때에도 묵묵히 전통 한식을 깊이 있게 지키는 곳이 있으니 그저 고맙다.
여름날 봉래헌에 가면 신선로는 기본이고 오이채가 듬뿍 들어간 여름 만두인 규아상이 초록 잎 위에 얌전히 나온다. 밀가루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녹두산적, 실같이 고운 채의 구절판부터 된장찌개 그리고 다진 생강에 꿀을 넣어 조린 강란(생란)이 코스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봉래헌의 음식은 변하지 않는 듯하지만 알고 보면 작은 시도가 끊임없다. 시대에 맞게 짠맛, 단맛의 강도를 변화시키고 세련된 맞춤이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변화와 비슷하다.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yunal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