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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총리·법무장관의 판사 비판… 3권 분립 흔드는 행정부 오만

입력 | 2020-08-27 00:00:00


정세균 국무총리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코로나19 재확산의 책임 소재를 두고 보수단체의 8·15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판사를 공개 비판했다. 정 총리는 그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잘못된 집회 허가를 했다. 신고 내용과 다르게 집회가 진행될 거라는 판단은 웬만한 사람이면 할 수 있는데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추 장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비상 상황에선 사법당국이 책상에만 앉아서 그럴 게 아니라 국민과 협조할 때는 협조해야 한다.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미 여권 내에선 해당 판사와 법원을 비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이른바 ‘광화문 집회 책임론’이 한발 더 나아가 집회를 허가해준 판사 책임론으로 번진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해당 판사를 해임해야 한다는 주장이 올라왔고,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해당 판사의 실명과 얼굴 사진을 올려놓는 신상 털기까지 벌어지고 있다.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경우 사법부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총리와 법무행정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대놓고 개별 판사와 법원을 비난한 것은 3권 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동이다.

우리 헌법은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 가치들을 실현하도록 한 3권 분립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국회의장을 지낸 정 총리와 판사 출신인 추 장관이 일부 여론에 편승하듯 사법부를 공개 비판한 것은 코로나 재확산 사태의 책임을 광화문 집회로 집중시키려는 현 정부의 습관적인 남 탓 찾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서슴없이 판사 탓, 법원 탓을 하는 사고와 발상은 행정부 우월주의라는 독선에 빠질 위험이 크다. 4·15총선 압승 이후 여권의 일방 독주 국정 운영이 비판을 받는 마당에 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법원을 압박하는 투의 언행을 해서는 곤란하다. 법원마저 행정부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코로나 방역 실패보다 더 큰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