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로비 통해 공화-민주 캠프와 접촉 컨설팅펌 로펌 로비스트 물밑 경쟁 양당 캠프 인맥 및 공약 분석 주력
11월 3일 미국 대선이 약 7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집권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 사진)과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오른쪽 사진) 대선캠프에 줄을 대려는 미 로비업계의 경쟁이 뜨겁다. 트럼프 대통령이 24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바이든 후보는 20일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연설하고 있다. 샬럿·윌밍턴=AP 뉴시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그는 “11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관한 각종 정보 요청이 폭주하고 있다. 인맥을 모두 동원해 바이든 캠프의 주요 인사, 내부 움직임을 파악해왔다”며 “우리 회사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간 축적한 국방부, 중앙정보국(CIA)의 전문가 네트워크가 2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고서의 가격은 개당 약 500달러(60만 원).
미 대선이 약 7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워싱턴 로비업계 또한 달아오르고 있다. 바이든 후보의 지지율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에 대비해 바이든 캠프에 줄을 대려는 세계 각국 정부 및 대기업의 정보 수요가 늘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워싱턴 로비업계의 최대 대목을 맞아 대형 컨설팅, 법률회사는 물론 개인 로비스트들까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 ‘K스트리트’의 뜨거운 물밑 경쟁
‘K스트리트’는 워싱턴 백악관 북쪽에 있는 가로 4마일(약 6.4km)의 긴 도로다. CGCN그룹, K&L 게이츠, 와일리 레인 등을 비롯한 수천 개 회사가 몰려있는 로비업계의 본산이다. 업계 전문가 제임스 서버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 로비업계에 10만 명의 로비스트가 있고, 연간 시장 규모는 90억 달러(약 10조8000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로비업계가 2016년 미 대선에 쓴 돈만 해도 20억 달러에 이른다.미 로비업계의 본산으로 평가받는 K스트리트의 간판 뒤로 주요 로비회사가 둥지를 튼 여러 건물이 보인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보편화했지만 최근 K스트리트의 물밑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는 평가가 많다. 전화, 화상회의 같은 비대면 접촉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전화 한 통으로 집권 공화당과 야당 민주당의 대선캠프 핵심인사에 접근할 수 있는 로비회사나 로비스트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미국 대사는 워싱턴 유명 법률회사 ‘맥라티 어소시에이츠’에서 일종의 자문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무실에 안 나간 지 꽤 됐지만 전화로 일하느라 더 바쁘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 컨설팅 수요가 많다”고 했다. 그가 속한 회사의 창업자인 마크 맥라티 회장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 공동 창업자인 넬슨 커닝햄 사장은 바이든 후보가 상원 법사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법률자문위원으로 호흡을 맞췄던 민주당 인사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의 대선 공약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이에 대비하려는 움직임도 한창이다. 컨설팅회사 브룬즈윅 그룹은 이달 초 바이든 대선캠프의 수석 자문역인 카멜 마틴을 초청해 ‘바이든 호의 방향-그의 정책이 비즈니스에 미칠 영향’이란 주제의 온라인 세미나를 진행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 웨비나(웹+세미나)에는 포천 100대 기업의 고위 임원 및 로비스트 등 150명이 참가했다.
또 다른 대형 법률회사 ‘넬슨 멀린스’의 신우진 파트너 변호사는 “양당 후보의 세부 공약, 이를 입안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인사, 해당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할 지를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작업이 정권교체 혹은 트럼프 2기 내각 출범 때 대관(對官) 업무의 성공 가능성을 판가름할 핵심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 후원금으로 대선 캠프 공략
상당수 외국 정부는 현재 직·간접적으로 바이든 캠프의 고위인사와 접촉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가 당시 트럼프 후보를 물밑 지원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러시아 스캔들’ 후폭풍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에 바이든 캠프 측에서는 워싱턴 주재 주요국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대선 때까지는 접촉을 삼가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사실상 최대 공약인 바이든 측으로선 불가피한 행보다.이에 핵심 인사 접촉 대신 후원금 모금을 통한 ‘측면 접촉’에 나선 로비회사도 많다. K스트리트의 거물로 꼽히는 유명 로비스트 스티브 엘먼도프는 이달 초 자신의 회사에서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후원금 모금 행사를 진행했다. 바이든 후보가 후원금을 직접 받지 않으려 하자 대신 DNC에 기부를 한 셈이다. 그는 대선 결과를 좌우할 핵심 경합주로 꼽히는 위스콘신과 미시간주 민주당 사무실에도 거액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러스트벨트(낙후된 공업지대)의 대표 지역인 두 주는 4년 전 대선에서 당초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예상됐던 곳이다. 하지만 클린턴 캠프가 낙승을 예상해 다소 안일한 표심 관리를 하는 사이 트럼프 후보가 1% 미만의 초접전 끝에 두 곳 모두를 싹쓸이했고 여세를 몰아 백악관 주인에 올랐다. 권토중래를 노리는 민주당으로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엘먼도프가 50개주 중 두 곳을 콕 찍어 후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은 로비스트의 접근을 오히려 반기는 쪽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집권 1기 동안 주요 로비스트들은 대통령 참모의 견제를 거의 받지 않은 채 백악관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반이민, 미국 우선주의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정책에도 상당한 입김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너서클을 끌고 가는 사람들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이력을 발판으로 행정부 고위직에 입성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차기 내각에 대한 하마평도 무성하다. 정계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 주인이 되면 흑인 여성인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무장관, 블링큰 전 부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이 돌고 있다.
국방 분야 워킹그룹의 핵심 인물은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각각 국방차관을 지낸 프랭크 켄달과 크리스틴 워머스다. 역시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차관을 지냈으며 유명 싱크탱크 신(新)미국안보센터(CNAS)를 이끌고 있는 미셸 플루노이도 포진해 있다. 그는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하면 미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4년 전 대선에서도 클린턴 후보의 국방 및 안보 브레인으로 활약했다.
경제 분야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바이든 후보와 막판까지 경합한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바이든 후보의 상원의원 시절 오랫동안 보좌관을 지낸 테드 커프먼, 바이든의 경제자문역을 지낸 재러드 번스타인 등이 핵심 인물로 꼽힌다. 부유세 도입 등을 주창해 진보 유권자에게 깊은 각인을 남긴 워런 의원은 재무장관 기용설이 나돌고 있다. 진보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지냈으며 친노조 성향으로 유명한 번스타인은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격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물망에 올랐다.
올해 초 민주당 경선에서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유엔 대사 혹은 보훈처장관, 바이든 후보가 부통령 후보로 고려했던 흑인 여성 캐런 배스 하원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 및 주택장관으로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년과 마찬가지로 재집권에 성공하면 ‘충성심’을 인선의 핵심 요인으로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 와중에 연방군 투입 여부를 놓고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경질이 유력하다. 후임으로 대중 강경파인 팀 코튼 상원의원이 거론된다. 상원의원 출마설이 끊이지 않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또한 교체 대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