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나는 개막식 하루 전날인 12일, 제천에 도착해서 개막 전 행사인 토크콘서트를 관람했다. 콘서트는 2005년 1회부터 2019년 15회까지 이어진 영화제의 역사를 회고했다. 아시아 최초이자 유일한 음악영화제로 성장해 온 걸음을 되돌아보고 영화제의 정체성을 찾고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올 영화제는 코로나19와 호우를 겪은 아픈 마음을 달래면서 안전을 최우선시하며 행사가 축소된 상태로 진행됐다.
하지만 올해 영화제 공식 트레일러는 무척 흥미로웠다. 트레일러는 안상훈 감독의 연출로 가야금을 어깨에 멘 한 노인이 수풀을 헤치고 호숫가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호숫가에서 가야금을 연주한다. 그러자 커다란 UFO가 나타나 노인을 태워서 떠나고 그 자리에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심벌이 남겨지며 마무리된다. 이 노인은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한국의 3대 악성 중 한 사람이자 6세기에 활약한 우륵이다. 가야금을 만들고, 12악곡을 지어냈다는 위대한 음악가다. 나는 트레일러를 통한 한국의 고대 악성 우륵과의 만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에는 8세기에 세워진 해외 보물들을 보존한 쇼소인(正倉院)이라는 창고가 있다. 그곳에는 신라금(新羅琴) 3개가 있다. 신라에서 전래한 가야금이라고 한다. 그 옛날 우륵이 만든 가야금이 신라를 거쳐 일본에까지 전래됐다는 사실을 나는 UFO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 우륵 이야기의 후속편으로 상상해 보기도 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훌륭한 점은 지역 문화 행사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찾아가는 동네극장, 시민 참여 포스터 공모전 등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영화제 기간 외에도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찾아가 영화 상영을 통해 문화적인 지역 활성화를 꾀하고,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여러 행사가 생략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손길이 눈에 띄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지역 사람들의 섬세하고도 따뜻한 배려를 곳곳에서 만났다. 특히 개막식의 사전 리셉션에서는 주민들이 준비한 약초 도시락, 연잎차와 당귀를 비롯한 약재를 넣어 달인 약초차, 손수 만든 예쁜 수제 양갱 등을 선물 받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한때 우리 모두를 멈추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려운 시기에 멈추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앞으로의 길잡이를 제시해냈다. 나는 이번 제천 여행을 통해 코로나19 속에서도 굳건히 일상을 일으키는 지역민들의 저력을 본 듯하다. 그래서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어느 해보다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또 새 학기를 앞둔 내게도 큰 지표가 됐다. 영화제가 앞으로도 더욱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