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15번째 편인 오늘은 최고가로 분류되는 수입차 브랜드가 국내에서 질주하는 모습과 그 이유를 다뤄볼까 합니다.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이 올해 상반기에 최대 2~3배에 이르는 판매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일반도로 주행이 어려운 초고가·고성능차 대신 편안한 주행이 가능하면서 가격은 오히려 더 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이 판매를 견인하는 모양새입니다.
‘슈퍼 SUV’란 단어를 앞세우며 판매를 늘리고 있는 람보르기니의 ‘우루스’. 람보르기니 제공
그리고 그 배경에는 흔해진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대신 더 보기 드문 브랜드를 찾는 수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자동차 시대의 선두주자로 각광받고 있는 ‘테슬라’라는 기업을 가볍게 짚어본 지난번 14번째 휴일차담에 보내주신 큰 관심에도 감사드립니다. ( 테슬라에서 추가 구매가 가능한 기능은 기본 제공되는 ‘오토파일럿’이 아니라 ‘완전 자율 주행 기능(Full Self-Driving)’이라는 점은 기사에서 수정했습니다. 댓글로 지적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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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에도 15% 성장한 수입차 시장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차량 등록을 기준으로 한 수입차 판매 통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이 기간에 12만8000여대를 판 것과 비교하자면 14.9%의 성장입니다.
올 3~6월 개별소비세가 큰 폭으로 인하(기존의 70% 감면)된데다 아우디와 폭스바겐 등 주요 브랜드가 ‘디젤 게이트’ 파문을 딛고 새로운 모델로 판매를 크게 늘린 영향이 커 보입니다.
올 1~7월 5500대 이상 팔리며 아우디의 반등을 이끈 ‘A6’(사진은 더 뉴 아우디 A6 TDI 콰트로 프리미엄 모델). 아우디코리아 제공
이 통계에는 수입 전기자동차를 대표하는 테슬라의 판매가 빠져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는데요. 테슬라는 올 상반기에 ‘모델3’를 6830대나 팔았습니다.
아무튼, 2018년 26만 대 판매를 넘겼다가 지난해 다소 침체됐던 수입차 시장은 올해 다시 살아나는 모습입니다.
● 2~3배 판매 늘린 포람벤(포르쉐·람보르기니·벤틀리)
이런 통계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점도 있습니다. 억대 이상의 모델을 팔고 있는 스포츠카·슈퍼카·럭셔리차 브랜드의 약진입니다.
스포츠카 브랜드로 유명한 포르쉐를 먼저 보겠습니다. 포르쉐는 일부를 뺀 대부분 국내 모델의 시작가격이 1억 원을 넘고 ‘911’과 ‘파나메라’ 일부 모델은 2억 원대에서 시작하는 브랜드인데요.
포르쉐는 올 1~7월 국내에서 5287대를 판매했습니다. 지난해 이 기간 2900대에 비하면 82.3%나 성장했습니다. 테슬라가 빠져 있는 이 수입차 판매에서의 비중은 2.25%로 올랐습니다.
포르쉐가 최근 공개한 신형 911 터보. 포르쉐코리아 제공
슈퍼카 브랜드로 알려진 람보르기니는 이 기간에 국내에서 160대를 팔았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1대에 비하면 무려 213.7% 성장했습니다.
럭셔리카 브랜드인 벤틀리 역시 1~7월을 기준으로 지난해 73대에서 올해 179대로 판매를 늘렸습니다. 145.2% 증가입니다.
판매 차량의 가격이 최소 2억 원 대에서 시작하는 이 두 브랜드들의 볼륨 자체는 여전히 크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장률로 보면 지난해의 2~3배에 이르는 판매를 기록한 것입니다.
‘궁극의 빨간 맛’,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의 판매량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안타깝게도 페라리는 이런 통계를 통해 판매량을 공식 공개하진 않고 있습니다.
다만, 올 상반기 이탈리아 공장의 셧다운으로 국내 판매·인도가 지난해보다 좀 줄었지만 연간 판매로는 역시 지난해보다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 판매량 증가 이끈 건 ‘가격 낮은 SUV’
이들 브랜드가 눈에 띄게 성장한 비결은 어떤 모델을 팔았나를 살펴보면서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존 모델보다 가격이 낮은 SUV 판매가 눈에 띕니다.
올해 1~7월에 벤틀리의 경우 럭셔리 SUV를 표방한 ‘벤테이가’가 116대, 람보르기니는 슈퍼 SUV를 내세운 ‘우루스’가 40대 판매되면서 판매 신장을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벤틀리의 SUV ‘벤테이가’. 벤틀리모터스코리아 제공
이 두 차는 모두 공식 판매 시작가격이 2억 원대여서 이들 브랜드가 기존에 판매하던 차량에 비해 가격이 낮습니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이용하기엔 편한 차들로 평가됩니다.
람보르기니 같은 브랜드의 이른바 ‘슈퍼카’는 과속방지턱 때문에 일반도로 주행이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SUV 모델이 나오면서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됐다는 것입니다.
가격과 활용도 측면에서 모두 ‘접근성 높은 모델’로 판매를 키운 셈입니다.
람보르기니의 SUV ‘우루스’. 람보르기니 제공
일상생활에서도 편하게 탈 수 있는 SUV 라인업을 강화해 브랜드 전체의 판매를 크게 늘리고 경쟁력을 끌어올린 것은 포르쉐의 주요한 시장 공략 방법으로도 꼽힙니다.
포르쉐의 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스포츠카인 ‘911’로 꼽히지만 포르쉐의 판매를 주도하는 것은 SUV인 ‘카이엔’입니다.
올해 1~7월에도 ‘카이엔’(1010대)과 ‘카이엔 쿠페’(795대) 등이 포르쉐의 ‘효자 모델’이었습니다.
포르쉐 ‘카이엔’. 포르쉐코리아 제공
‘가족을 위한 스포츠카’라는 구호를 앞세운 카이엔은 이미 수년 전에 이른바 ‘강남 싼타페’로 등극한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포르쉐코리아에서는 쿠페형 디자인을 채택하고 동력 성능을 강화한 카이엔 쿠페를 통해 또 한번 시장을 넓히는 모양새입니다.
● “독일 차 흔해지니 슈퍼카로”
하지만 ‘접근성 높은 SUV 판매 증가’라는 결과만으로 이들 브랜드의 성장이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급스러운 수입 SUV가 이들만이 아닌데 이들 브랜드의 유별난 성장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고 봐야하겠지요.
수입차 업계에서는 “아무래도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너무 흔해졌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수입차를 타는 고객들은 아무래도 ‘희소성’에 대한 생각이 있기 마련인데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같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길에 너무 흔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들로 ‘개성’을 드러낼 수 없으니 더 비싼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커진다는 설명인데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1억 원을 넘나들거나 심지어 수억 원에 이르는 수입차를 살 때는 당연히 이런 브랜드 가치에 대한 고려가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가의 수입차를 선택할 때는 차의 성능, 디자인, 인테리어 등 직접 느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고려도 있겠지만 ‘브랜드’ 자체가 주는 만족감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닛 앞쪽에 위로 우뚝 솟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은색 삼각별 로고’를 운전석에 꼭 보고 싶어 하는 수요가 분명히 있다고 얘기하는 수입차 업계의 얘기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삼각별’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면 말(포르쉐, 페라리)이나 황소(람보르기니)가 그려진 브랜드 로고를 찾아가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람보르기니의 SUV ‘우루스’. 람보르기니 제공
이런 분석을 백으로 한번 바꿔 놓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루이비통이 흔해진다 싶으면 샤넬 백 들고 싶고 샤넬이 많이 보인다 싶으면 에르메스 백 들고 싶은 것이 고객의 심리일 수 있습니다.
에코백이 훨씬 가볍고 물건도 많이 들어가는데 가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는 논리는 엄연히 실존하는 이런 ‘마음’ 앞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선호는 개개인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에 ‘명품백’보다 ‘에코백’이 더 선호되는 상황이나 개인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 “집 못 사니 차 산다?” “고소득층은 굳건하다?” 분분한 해석
초고가 수입차의 판매 증가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분석해 볼만한 시사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 집 살 수 없게 된 젊은 층이 자동차 구매에 열을 올린다는 분석도 있는 듯한데 가장 타당한 분석인지는 아리송합니다.
이런 분석을 거꾸로 바라보자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자산 가치가 상승해서 고가의 수입차 접근이 부담스러워지지 않은 계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자산 가치 상승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유동성 증가와 화폐 가치 하락이라는 점을 감안하자면 기존보다 가격대를 조금 낮춘 초고가 수입차의 가격표가 이제는 일부 고객에서는 접근이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으로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불황이라고들 하지만 초고가 수입차를 살 수 있는 고소득 계층은 굳건하다는 측면에서도 접근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벤틀리의 SUV ‘벤테이가’. 벤틀리모터스코리아 제공
다만, 차를 파는 회사에서는 고객의 재무상황까지 자세히 분석하기는 쉽지 않거나, 시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혹 어느 정도의 자료가 있더라도 쉽사리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합리적인 추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있을 듯 합니다.
● “수입차 시장 다변화의 신호” 해석도
초고가 수입차 판매 증가에 대해 수입차 업계에서 나오는 설명 가운데 “시장 다변화의 과정”이라는 분석은 눈여겨 볼만 합니다.
최근 수년 이상 국내에서는 매년 수입차가 20만 대 이상 팔리고 있습니다. 180만 대 안팎의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입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E클래스(메르세데스벤츠), 5시리즈(BMW) 등의 베스트 셀링 카가 나온 시장에서 초고가 차량이 조금씩 시장을 키우면서 발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이들 브랜드의 성장과 더불어 수입차 업계에서는 작지 않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함께 보면 더 타당성이 있는 시각입니다.
개선된 디자인에 안전, 스웨덴 감성을 앞세운 ‘볼보’는 지난해 1만 대 클럽 가입에 이어 올해도 1~7월 기준 24.6% 늘어난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볼보의 대형 SUV ‘XC90’의 주행 모습. 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지금은 BMW그룹 소속이지만 영국 브랜드로 작지만 매운 주행 성능을 앞세운 ‘미니’도 이 기간에 15.0% 성장하면서 벌써 6000대를 넘게 팔았습니다.
또 고가 수입차 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고성능 차량인 ‘메르세데스-AMG’와 럭셔리카에 해당하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판매를 늘리면서 대응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성능을 내세운 ‘AMG’ 차량들은 올해 1~7월에만 2300대가 팔렸습니다. 상반기에 벌써 지난해 전체 판매량(2740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더 비싸고 남다른 모델’의 판매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AMG A 35 4MATIC 세단.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매달 판매·인도할 수 있는 물량의 편차가 큰 관계로 수입차 업계의 좀 더 정확한 성적표는 아무래도 연말쯤 돼야 좀 더 분명해질 듯 합니다.
전기차가 대세처럼 자리 잡아 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내연기관 성능을 기반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좀 남달라 보이는’ 브랜드들이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