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변이 오해와 진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하지만 과학적으로 현재 코로나19 관련 ‘변종’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달 18일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장의 브리핑에서 “코로나19 관련 새로운 변이(바이러스 유전체 일부가 바뀌는 현상)가 발견됐지만 특이 동향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라고 밝혔다. 바이러스 유전체(게놈) 정보를 공유하며 매일 코로나19의 변이 동향을 감시 중인 국제기구 국제인플루엔자데이터공유이니셔티브(GISAID·지사이드) 역시 30일까지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이나 위협적인 변이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흔히 변종은 코로나19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차이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로 양상이 바뀌는 것을 일컫는다. 반면 변이는 바이러스의 수만 개 유전물질 중 한두 개가 달라졌지만 병의 양상 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과학계는 코로나19의 일부 변이는 있어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변종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 바이러스의 ‘변이’는 자연스러운 현상… 실제 바이러스 특성 바꿀 가능성은 낮아
유전체는 음악의 ‘악보’에 비유할 수 있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유전체는 3만 개의 음표로 구성된 크고 복잡한 교향곡의 악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이 악보를 이용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고 인체 세포에 감염되며 전파된다. 유전체가 악보라면 이런 바이러스의 활동은 오케스트라 연주다.
바이러스가 음악과 다른 것은, 연주와 함께 자신의 악보(유전물질)를 복제하는 활동도 동시에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악보를 일일이 필사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수많은 음표로 구성된 악보를 필사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오류가 발생한다. 가끔 음표 한두 개를 잘못 옮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유전체 역시 확률적으로 복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을 ‘변이’라고 한다. 변이는 확률적인 현상으로 어느 생명체나 다 일정한 속도로 변이가 발생한다. 이달 5일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에 따르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변이 형성 속도는 1년에 약 24.1개다. 하나의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감염과 전파를 반복한다고 할 때 1년에 24개, 한 달에 두 개의 변이는 저절로 형성된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60% 수준으로, 바이러스 중에서는 평범한 속도다.
바이러스나 생명체의 변이는 대부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변이는 중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영역이 아닌, 별로 의미가 없는 유전체 영역에서 생겨난다. 교향곡 악보의 음표 하나가 잘못 복사됐다고 전체 연주에 큰 영향이 생기지는 않는 것과 같다.
만약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의 유명한 주제부인 ‘운명이 문 두드리는 소리(빰빰빰빰∼)’처럼 중요한 위치에서 음표가 바뀌어 있다면 사정이 다르다. 바이러스도 중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영역에 변이가 생기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 바뀌어도 이 유전물질이 만드는 아미노산(단백질의 재료)은 바뀌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때에도 변이가 바이러스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
○ G형이 주류가 된 까닭은
현재 이 모든 까다로운 변이의 조건을 통과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코로나19 변이는 딱 하나다. 흔히 ‘유럽형’ 또는 GISAID의 자체 기준으로 ‘G형’이라고 부르는 변이다.
이 변이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 분자 딱 하나가 바뀐 변이다. RNA는 아데닌(A)과 구아닌(G), 유라실(U)과 시토신(C)이라는 네 가지 음표 분자로 적힌 악보다. G형 변이는 3만 개의 분자 중 2만3403번 분자를 A에서 G로 바꿨다. 이에 따라 바이러스 표면의 돌기 단백질인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 중 614번 아미노산이 아스파트산(D)에서 글리신(G)으로 바뀌었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 표면에 돌기처럼 나 있는 단백질로, 인체 세포에 감염될 때 인체세포 표면 단백질인 ‘안지오텐신전환효소2(ACE2)’를 붙잡아 침투를 개시하는 일종의 ‘열쇠’ 역할을 한다. 침투의 핵심 단계인 만큼, 이 단백질의 구조 변화는 감염력이나 침투력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어 주목받아 왔다.
바이러스 유전체 계통을 분석하는 국제 과학 프로젝트인 ‘넥스트스트레인’이 이달 15일 공개한 분석 결과를 보면, 특이하게도 이 변이는 2월 이전에 등장한 뒤 2월 말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급격히 수를 늘렸고, 이후 북미 및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건너가 널리 퍼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최초 유행지인 아시아에도 이 시기에 역수입됐다. 현재는 중국 등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주류’가 됐다. 워낙 수가 많다 보니 이 유형은 다시 또 다른 염기 분자의 변이를 기준으로 G형과 GH형, GR형 등 세 유형으로 세분됐다. 한국도 5월 서울 이태원발 집단감염 이후 이들 유형이 늘고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이달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국내 지역 감염 코로나19 환자 685명의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감염 환자의 77% 이상이 GH형의 바이러스”라고 밝혔다. GR형까지 포함할 경우 국내 감염 80%가 넓은 의미의 G 유형에 속한다.
원래 바이러스 유형은 단순히 염기서열 차이만을 바탕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임상적으로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변이는 7월 초 생명과학학술지 ‘셀’을 통해 바이러스의 세포 침투력 또는 사람 사이의 전파력을 높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 전파력 차이에 대해선 반론 적지 않아
하지만 이 연구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먼저 침투력과 전파력을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게놈 전문가인 김태형 테라젠바이오 상무는 “감염력과 전파력은 동의어가 아니며 변이에 의한 체내 바이러스 양 증가가 전파를 증가시키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달 5일 자국 내 환자 3700명의 게놈 분석 결과를 공개한 일본 국립감염증연구소도 “(게놈 정보로는) 병원성 변화를 판정할 수 없다”며 “환자 임상 소견과 바이러스주의 세포생물학 및 감염실험을 종합해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예일대도 지난달 초 셀에 발표한 논평에서 “G형 코로나바이러스가 더 통제가 어려운지, 중증도에 기여하는지, 백신 개발에 영향이 있을지 등이 모두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보다 많은 게놈을 이용한 연구에서 실제 역학적 차이가 미미하게 나오기도 했다. 6월 말 영국의 코로나19 게노믹스UK 컨소시엄(COG-UK)이 3만 명의 환자로부터 게놈 데이터를 확보해 전파력을 분석한 결과, G형 변이를 지닌 바이러스의 실제 전파력의 차이는 1.2배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9배 차이가 난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유럽과 남미 등 코로나19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무주공산’에 먼저 들어가 퍼져 우연히 주류가 됐을 뿐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미미하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이미 전 세계 바이러스의 주류 유형으로 자리 잡은 만큼 백신이나 치료제의 임상시험도 상당수가 G 유형의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