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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교훈[내가 만난 名문장]

입력 | 2020-08-31 03:00:00


이재운 홍콩중문대 교수

“하지만 이제 죽음은 무엇인가 추상적인 것이 돼 버렸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죽음을 마치 미지의 우주처럼 대합니다.” ―롤란트 슐츠 ‘죽음의 에티켓’ 중



독일 저널리스트 롤란트 슐츠가 쓴 책 ‘죽음의 에티켓’은 중간중간 읽기 불편한 책입니다. 독일인 특유의 건조한 문장으로 집요하게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어쨌든 당신이 바라는 것보다는 일찍 죽게 될 것’이라는 다소 냉소적인 말부터, ‘서른 살이 되면서부터 인간은 8년에 한 번씩 다음 연도에 죽을 확률이 두 배로 높아진다’는 알고 싶지 않은 통계도 나옵니다. 정확한 죽음의 순간과 다양한 장례식의 풍경을 읽다가 보면 나의 죽음을 한 번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죽음이 탄생한 순간부터 반드시 있게 될 끝맺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냅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면서 다시 기억해 냅니다. 장례식장을 나서면서 떠난 자들에 대한 추모와 더불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고민,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타임지가 2016년에 ‘성공한 자녀들의 비밀(Secrets of Super Siblings)’이라는 기획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각계각층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형제자매들의 가족을 심층 취재한 내용이었는데, 그중에 인상 깊은 주제는 ‘죽음의 교훈’이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어린 나이에 겪은 사람들이 그 슬픔과 더불어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죽기 전에 무슨 일을 해내고 말겠다는 절박함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 그리고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은, 오늘을 분명 더 가치 있게 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대하는 삶이 아닌, 나답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힘들고 지치는 요즘 나의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이 지금의 삶을 조금 빛나게 했으면 합니다.

이재운 홍콩중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