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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끝자락, 파도치는 해변으로[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입력 | 2020-08-31 03:00:00

〈20〉 두 편의 서핑 영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영상 그림책을 읽듯 담담하게 이어져 관객은 스크린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IMDb 제공

※이 글에는 ‘폭풍 속으로’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핑 영화는 현실 도피의 영화다. 현실이 힘겨운 사람들은 현실의 가장자리인 해변으로 간다. 거기서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현실의 강고함을 인지한다. 잠시나마 현실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은 서핑 보드라는 최소한의 도구를 가지고 파도에 직접 부딪힌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시 현실의 육지로 돌아온다. 그러나 어떤 서핑 영화에는 육지로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

여기 두 편의 서핑 영화가 있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폭풍 속으로’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폭풍 속으로’는 양각(陽刻)으로 새긴 서핑 영화다. 아드레날린 중독자의 영화답게 빠른 카메라 워크와 클로즈업과 타오르는 불길과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와 직각으로 떨어지는 스카이다이빙과 격렬한 키스와 거친 총격과 과감한 질주와 고함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주인공 보디사트바(菩薩)는 기성 시스템을 인정하지 않고, 목전의 현실에 안주하려 들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털고, 가장 험한 파도를 찾아 서핑을 떠난다. 50년 만에 도래한 최대의 파도 앞에 선 보디사트바. 오랫동안 그를 추적해 온 경찰은 마침내 그를 체포하려 들지만, 보디사트바는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할 거대한 파도 속으로 서핑을 시작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 영화 ‘폭풍 속으로’의 한장면. IMDb 제공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음각(陰刻)으로 새긴 서핑 영화다. 허무의 중독자 영화답게 거기에는 타오르는 불길도, 스카이다이빙도, 총격도, 고함 소리도 없다. 그곳에서 연인들은 키스를 하지 않고, 단지 말없이 나란히 걷을 뿐이다. 카메라는 거의 이동하지 않고 시퀀스는 대개 정지된 장면들의 투박한 연결로 이루어진다. 관객은 클로즈업 없이 담담하게 이어진 영상 그림책을 읽고 덮는다. 미처 보여주지 않고 들려주지 않은 것을 상상한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몰려다니며 축구하는 사람들,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 서핑하는 사람들, 그리고 홀로 서핑을 하러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사람. 사람들이 축구를 할 때, 농아(聾啞) 청년 시게루는 쓰레기를 수거한다. 그러다 저 너머 해변의 서퍼를 보고 매료된다. 서핑을 배워 마침내 서핑 대회에까지 참가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시게루는 자기 순서가 돌아온 줄을 몰라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폭풍 속으로’에서 가장 로맨틱한(?) 부분은 경찰이 연인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은행 강도에 가담하는 장면이다. 그는 사랑 때문에 자신이 수호해야 할 공공질서를 파괴한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가장 로맨틱한 부분은, 시게루가 연인이 탄 버스를 따라서 서핑 보드를 들고 뛰는 밤 장면이다. 서핑 보드를 들고 버스에 타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그는 연인과 함께 탈 수 없다. 그는 서핑 보드를 옆에 끼고 밤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단 한마디 불평도 소리 내어 말한 적이 없던 시게루는 어느 날 서핑을 나가 다시는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폭풍 속으로’의 보디사트바처럼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시게루가 홀로 사라져 간, 파도 휘몰아치는 바다를 상상한다. 시게루가 그토록 육지를 떠나고 싶었던 이유를 상상한다. 여느 사람에게는 파도 소리가 높아서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세계, 시게루에게는 귀가 들리지 않아 그저 무음 처리된 세계. 그 파도 속에서는 아무도 말하고 들을 수 없어, 누구나 공평하게 귀가 먹는 세계. 시게루가 파도에서 본 것은 그가 경험한 세계 중에서 가장 공정한 세계가 아니었을까. 그것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