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두 편의 서핑 영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영상 그림책을 읽듯 담담하게 이어져 관객은 스크린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 IMDb 제공
서핑 영화는 현실 도피의 영화다. 현실이 힘겨운 사람들은 현실의 가장자리인 해변으로 간다. 거기서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현실의 강고함을 인지한다. 잠시나마 현실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은 서핑 보드라는 최소한의 도구를 가지고 파도에 직접 부딪힌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시 현실의 육지로 돌아온다. 그러나 어떤 서핑 영화에는 육지로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나온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 영화 ‘폭풍 속으로’의 한장면. IMDb 제공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몰려다니며 축구하는 사람들,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 서핑하는 사람들, 그리고 홀로 서핑을 하러 나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사람. 사람들이 축구를 할 때, 농아(聾啞) 청년 시게루는 쓰레기를 수거한다. 그러다 저 너머 해변의 서퍼를 보고 매료된다. 서핑을 배워 마침내 서핑 대회에까지 참가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시게루는 자기 순서가 돌아온 줄을 몰라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폭풍 속으로’에서 가장 로맨틱한(?) 부분은 경찰이 연인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은행 강도에 가담하는 장면이다. 그는 사랑 때문에 자신이 수호해야 할 공공질서를 파괴한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가장 로맨틱한 부분은, 시게루가 연인이 탄 버스를 따라서 서핑 보드를 들고 뛰는 밤 장면이다. 서핑 보드를 들고 버스에 타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그는 연인과 함께 탈 수 없다. 그는 서핑 보드를 옆에 끼고 밤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단 한마디 불평도 소리 내어 말한 적이 없던 시게루는 어느 날 서핑을 나가 다시는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폭풍 속으로’의 보디사트바처럼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시게루가 홀로 사라져 간, 파도 휘몰아치는 바다를 상상한다. 시게루가 그토록 육지를 떠나고 싶었던 이유를 상상한다. 여느 사람에게는 파도 소리가 높아서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세계, 시게루에게는 귀가 들리지 않아 그저 무음 처리된 세계. 그 파도 속에서는 아무도 말하고 들을 수 없어, 누구나 공평하게 귀가 먹는 세계. 시게루가 파도에서 본 것은 그가 경험한 세계 중에서 가장 공정한 세계가 아니었을까. 그것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