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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낙인찍을 권리는 없다[현장에서/김기윤]

입력 | 2020-09-01 03:00:00


코로나19 완치자 김호섭 씨가 텅 빈 식당 복도를 오가며 실내화를 정리하고 있다. 전주=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김기윤 문화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잠시 누그러들던 6월.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코로나 낙인’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무턱대고 전화를 돌렸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완치한 사람을 찾을 단서는 공교롭게도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한 상호명, 기사, 댓글, 지역 맘카페 게시글 같은 또 다른 낙인의 잔해였다.

우여곡절 끝에 연결이 된 이들은 “직장 동료들이 제 부서를 옮겨 달라고 했다” “사무실에서 누구도 말을 안 걸더라”며 몇 달간 겪은 마음의 상처를 쏟아냈다. 하지만 인터뷰 요청에는 “또 직장에 민폐가 될 것 같다” “몸은 돌아왔어도 마음은 아니다”며 번번이 거절했다. 다시 자신에게 향할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을 게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지역사회에서 ‘코로나 민폐남’으로 ‘찍힌’ 전북 전주시 ‘죽도민물매운탕’ 사장 김호섭 씨(67)에게 전화했다. 마찬가지로 난색을 표하던 김 씨는 한참 침묵하다 “일단 한번 내려와 보라”고 했다.

식당에 도착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허락한 건 ‘전북 10번, 전주 3번’이라는 낙인 탓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그야말로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여서였다. 완치 판정을 받고 식당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유서 깊은 지역 맛집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따금 가게 전화벨이 울리자 김 씨의 심장은 또 쿵쾅댔다. 당장 “당신이 동네를 더럽혔다” “그냥 죽어버려”라는 저주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들릴지 몰랐다.

낙인의 굴레는 김 사장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도 끈질기게 괴롭혔다. 남편 대신 종종 가게 전화를 받던 부인 조미정 씨(64)는 “욕설 가득한 전화를 받을 때면 왜인지 모르게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고 털어놨다. 무시무시한 말을 받아내던 순간을 떠올리는 조 씨의 입술은 마스크 뒤에서 파르르 떨렸다.

그나마 지난달 29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김 씨의 사연을 접한 독자들 덕에 조금은 변화가 생겼다. 3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덕분인지 기사가 나온 날 오전부터 김 씨는 전국에서 위로의 전화를 받았다. 특히 대구에서도 “저희 때문에 괜히 힘드셨겠다. 힘내시라”는 응원 전화가 잇따랐다. 몇몇 ‘맛집 블로거’는 ‘코로나 맛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방문 후기를 올렸다. 가게를 찾은 손님들끼리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저희도 기사 보고 왔다”며 인사를 나누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김 씨에 대한 역학조사를 담당했던 강영석 전북도 보건의료과장의 페이스북에는 올 2월부터 이런 게시글이 올라있다. “사랑하는 도민 여러분, 마녀사냥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힘들어도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렵니다. 동선 공개로 아파하실 분들에 대한 따사로운 살핌을 바랍니다.” 8월 31일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2만 명에 이른다. 그들에게 낙인을 찍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김기윤 문화부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