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정글[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25〉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모처럼 피자를 배달시켜 먹으려고 했다. 마침 현관문에 새로 생긴 피자집 전단이 붙어 있어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피자집 사장님은 한창 바쁜 시간대라서 지금 주문하면 1시간이 넘게 걸릴 거라고 했다. 그 대신 배달앱을 통해 주문하면 적어도 30분 안에 피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전까지 배달앱을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아서 피자집 사장님의 말이 단번에 이해되지 않았다. 피자집 사장님은 전화 주문보다 배달앱을 통한 주문이 먼저라면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나를 약간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야, 너는 어떻게 아직 배달앱도 모르냐? 이 피자 먹을 자격도 없는 자식아!” 피자집 사장님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싶다.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에 피자집 사장님이 알려준 배달앱을 깔고, 복잡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 결제할 카드 정보를 입력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피자를 주문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피자집 사장님의 말을 의심했다. 전화 주문이든 배달앱 주문이든 피자 만드는 속도가 다른 건 아닐 텐데, 후자가 더 빠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자는 배달앱이 예고한 시간에 정확히 배달됐다. 스마트폰에 배달앱을 깔고 주문과 결제를 마친 시간을 포함해도 30분이 채 안 걸렸다. 또한 배달앱은 배달원의 동선을 지도 위에 점으로 고스란히 중계해 줬다. 피자집 사장님이 자기 말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나를 충분히 답답해할 만했다.

이 간편한 문명의 혜택을 그동안 못 누리고 살았다니 갑자기 원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문명인으로 거듭난 나는 그 후 배달앱을 통해 다른 음식도 두어 번 더 시켜 먹었다. 배달앱에는 없는 음식이 없었고, 가만히 앉아서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이 눈앞에 배달됐다. 그렇게 수많은 음식점이 배달 서비스업을 독점한 몇몇 플랫폼을 새로운 판로로 이용하고 있다. 얼핏 효율적인 분업처럼 보이지만 거긴 각자도생의 정글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음식점이 배달앱 카테고리 상단에 위치하려면 플랫폼의 요구에 최대한 협조할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의 상권을 함부로 침범하더라도 모른 척해야 한다. 플랫폼도 책임지지 않는 배달원의 안전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자장면 대체 언제 오냐고 전화를 걸면, 조금 전에 출발했다던 중국집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배달을 하지 않던 음식점까지 이 정글에 뛰어들고 있다. 이쯤 되면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던 칸트의 말은 아무짝에 쓸모없다. 차라리 이참에 서로가 서로를 생존에 이로운 수단으로 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음식점 사장님과 배달원이 보기에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나도 배달앱 지도 위의 여러 점 중 하나에 불과할 테니까.

　

권용득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