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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포스트 아베’와 한일관계

입력 | 2020-09-02 03:00:00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가 임기를 1년가량 남기고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해 일정 기간 치료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라며 “업무 수행을 할 수 있는지 판단이 되지 않아 사의를 굳혔다”라고 밝혔습니다. 일본 현대 정치사에서 8년을 집권한 최장수 총리가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스스로 물러나는 겁니다.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지자 일본 정국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 국가입니다. 의회는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으며 총리는 의회를 해산할 수 있습니다. 내각의 우두머리인 총리의 위상은 우리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가 최고 지도자입니다. 내각책임제에서는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어 내각을 구성하기 때문에 총리가 물러난다고 해서 정권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단원제인 한국과 달리 일본 국회는 양원제입니다. 참의원과 중의원으로 나뉘는데, 중의원에서 총리를 선출하게 됩니다. 중의원 과반 의석을 가진 자민당의 총재로 선출된 자가 총리가 되는 겁니다. 당 대표는 원칙적으로 전국 당원 투표와 원내 의원 투표를 통해 뽑습니다. 비중은 50 대 50입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긴급한 경우 ‘양원 의원총회’에서 후임 대표를 뽑을 수 있도록 한 당 규정을 근거로 약식 투표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약식으로 진행할 경우 당원에게 인기가 있지만 당내 세력이 약한 사람은 불리하겠지요.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외신들은 ‘포스트 아베’ 유력 인물로 당내 세력이 강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고노 다로 방위상 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누가 새 총리가 되든 그가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이 시급합니다. 국가적 대응 역량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지 궁금합니다. 지지율이 급락한 국내 정치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2분기 ―27.8%까지 추락한 경제성장률을 반전시켜야 하며,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한일 관계를 푸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신임 총재의 임기는 아베 총리의 잔여 임기인 내년 9월 말까지입니다. 따라서 누가 총재가 되더라도 안정적 기반 확보가 어렵습니다. 차기 총리는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 내년 9월 말 총재 선거에서 재선되거나, 국회를 해산한 뒤 선거에서 유권자의 신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 앞에서 의회를 해산하는 것은 정치적 도박이라 할 만합니다.

게다가 아베 총리가 역점 과업으로 추진했던 개헌을 차기 내각이 이어받을 힘을 갖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평화 헌법 9조를 고쳐서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만드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겨왔던 아베 총리의 퇴진으로 개헌의 동력이 약화된 것은 우리에게 반가운 일입니다. 또 엔화 약세를 고집했던 아베노믹스의 종말을 예견하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럴 경우 우리의 자동차, 반도체, 휴대전화 산업에 파란불이 켜질 수도 있겠지요. 무엇보다 새 총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수출 규제 등으로 한국과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데 전향적으로 나서는 일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