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열린 국무회의에서 555조8000억 원 규모의 2021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는 슈퍼팽창예산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작년 예산보다 8.5% 더 증가한 것이다. 내년 예상 총수입은 거의 그대로여서 총수입과 총지출 증가율의 차이는 ―8.2%포인트로 벌어진다. 이 같은 격차를 메우기 위해 역대 최대인 89조7000억 원의 적자 국채 발행 계획이 짜여 있다.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과감한 팽창예산을 편성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수출과 내수가 모두 무너진 상황에서 ‘한국판 뉴딜’을 통한 경기 회복과 취약계층 구제를 위한 지출은 정부 재정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전시(戰時) 상황’에 따라 예정에 없던 지출이 대폭 늘어나면 그걸 감안해 불요불급한 항목은 줄이는 게 상식인데 오히려 정반대로 갔다는 점이다. 당장 급하지 않은 항목은 줄이고 고용 유지 및 창출, 내수 경기 활성화, 취약계층 보호 등에 초점을 맞춰 집중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정작 예산 증가의 상당 부분은 인기 얻기식 사업들이다.
재정의 역할 확대가 중요하다 해도 날로 늘어나는 나랏빚 역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 정부까지만 해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오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는 무너진 지 오래다. 올해 본예산과 3차례 추경을 통해 벌써 43.5%에 달했다. 내년에는 46.7%로 올라가고 2024년이면 유럽 주요 국가 수준인 58.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제의 안정적 운영과 대외신용도의 버팀목인 재정건전성이 이처럼 급속도로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제 정부 예산안은 국회로 넘어갔다. 임시국회에서 보여준 독주하는 여당, 무력한 야당이 아니라 예산심사 과정에서만큼은 위기의식을 갖고 민생과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