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뉴욕 특파원
시 낭송이 끝난 뒤 궁금해서 물어봤다. 어쩌다가 이런 이벤트를 하게 됐느냐고 말이다. 학창 시절 연극을 공부하고 극단에서 활동했다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봄부터는 아무런 공연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흘려보내는 시간을 견디다 못해 얼마 전부터 동료들과 거리로 나와 길 가는 사람들을 관객 삼아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재능 기부’를 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했다.
요즘 뉴욕을 걷다 보면 수많은 사람이 죽고 직장을 잃은 전대미문의 비극 속에서도 이런 작지만 뭉클한 순간을 종종 경험할 수 있다. 이날 만난 청년처럼 수개월째 공연다운 공연을 하지 못한 예술가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보다 안전한 거리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뉴욕필하모닉 단원들도 최근 시 전역을 돌며 버스킹 공연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 차 소리, 때론 빗방울 소리와 섞여 들리는 클래식 음악은 장엄하고 조용한 실내 공연장에서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브로드웨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스탠드업 코미디언도 이제 센트럴파크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역대 최강의 바이러스가 만든 비극이 한편으로는 오히려 도시를 활기차고 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인이 됐다니 이런 역설이 없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함께 이겨 나가겠다는 의지가 고층빌딩 빽빽한 맨해튼을 모처럼 ‘사람 냄새’ 나는 도시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한때 지옥 같은 경험을 했지만 변화를 모색해 살아남은 최근 뉴욕의 모습은 결국엔 어떤 고난도 극복하거나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면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의 호소는 미국 시민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일 것이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