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20년 전 나는 미국계 제약회사 팀장으로 입사해 일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제약업계의 영업직 사원은 거의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 기업은 과감하게 여성을 제약영업직에 선발하고, 접대가 아닌 실력 중심의 영업을 정착시켰다. 직원의 리더십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 성별과 상관없이 승진할 수 있도록 했다. 20년이 지나 최근 외부인으로 그 회사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회사의 규모는 업계 최고로 올라섰고, 최고경영진의 80%는 여성이었다. 내가 바라본 그 기업이 여성을 특별히 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별과 상관없이 사원에서부터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에게 주고, 좋은 성과와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을 선발했다.
여성 리더에 대한 많은 ‘가설’들이 존재한다. ‘여성은 리더십이 부족하다’ ‘여성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리더로 성장하기 힘들다’ ‘여성은 남자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등등…. 과연 그럴까?
첫째, 성취를 목표로 위험을 추구하고 변화에 보다 개방적인 ‘향상 초점’ 성향과 안전을 목표로 위험을 회피하며 변화에 덜 개방적인 ‘예방 초점’ 성향 두 가지가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았다. 결과는 여성이 남성보다 향상 초점 성향이 떨어졌다. 둘째, 조직성과를 만들고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나 스트레스 관리와 같은 리더십 행동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리더십 효능감을 측정했더니 역시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다른 사람에 의해 리더로 추천을 받았을 때 언제든지 수락하거나 리더 역할 수행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는 것을 측정하는 사회규범적 동기에 있어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위와 같은 결과를 보면 앞서 언급한 리더로서 여성에 대한 ‘가설’이 편견이 아니라 실제를 반영하는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유 코치의 연구가 과학적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다음 결과다. 300여 명의 연구 실험 참여자 중 남성은 여성보다 전반적으로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았으며, 리더의 경험이 더 많았고, 총 경력은 더 길었다. 같은 조건에서의 비교라고 보기 힘들다. 리더십 경험이라는 변수를 통제하자, 성별 차이는 사라졌다. 그는 이 결과를 성별 차이가 향상 초점이나 리더십 효능감, 사회규범적 동기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보다 리더십 기회를 더 많이 가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맬컴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블링크’에는 클래식 오케스트라 단원 선발 오디션에서 절차의 변화가 어떤 결과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흥미로운 사례가 실려 있다. 과거에는 심사위원들이 오디션 참가자를 보고 듣고 평가하는 방식이었으며 대부분 남자 후보자들이 선발되었다. 그러다 1980년대 이후로 오디션에 스크린을 설치해 심사위원들이 귀로만 후보자들의 음악을 평가하게 되자,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오디션의 대다수 선발자가 여성이 되었다.
개인적 경험이나 과학적 연구와 사례들을 살펴보면 어느 것도 여성의 리더십이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성별과 상관없이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주는지의 여부이다. 여성가족부와 협업해 온 한국피앤지는 임직원 대상 성평등과 다양성 교육은 물론 철저한 성과 위주의 평가 및 승진제도를 통해 여성 관리자 및 임원 비율 50%를 5년 넘게 유지해왔다. 포천 500대 기업의 20%는 다양성 담당 최고 임원을 두고 있다. 우리의 직장은 현재를 살고 있을까? 과거에 살고 있을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