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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통역→센터… “7주간 17kg 감량”

입력 | 2020-09-02 03:00:00

6년 만에 코트 복귀 한국전력 안요한




한국전력 센터 안요한이 지난달 28일 열린 제천·MG새마을금고컵 현대캐피탈과의 경기에서 환호하고 있다. 그는 현역 복귀를 위해 7주간 17kg을 감량했다. KOVO 제공

프로배구 한국전력의 외국인 통역으로 일하던 안요한(30)은 6월 장병철 감독으로부터 ‘현역 복귀’라는 깜짝 제안을 받았다. 2012∼2013시즌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로 한국전력(당시 KEPCO)에 입단한 안요한은 자리를 잡지 못해 두 시즌 만에 코트를 떠났다. 이후 6년 만에 복귀 기회가 온 것. 안요한은 지난달 31일 통화에서 “팀에 민폐가 아닐까 고민이 많았다. ‘가슴이 뛰면 도전하라’는 아내의 응원에 딱 이틀을 고민하고 복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유니폼을 다시 입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코트에서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키 2m에 몸무게가 120kg까지 나가던 안요한은 7주간 무려 17kg을 감량했다. 식사량을 평소 3분의 2로 줄이고, 하루에 꼬박 6시간 이상 운동을 했다. 포지션도 레프트에서 센터로 바꾸면서 스텝 하나하나 새로 익혀야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랐던 복귀 무대는 화려하게 마감됐다. 안요한은 지난달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에서 주전 센터로 팀의 우승을 거들었다. 최근 2시즌 연속 V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던 한국전력은 3년 만에 컵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안요한은 대회 블로킹 2위(세트당 0.9개)를 기록했다. 안요한은 “너무 기쁘지만 자칫 이 기쁨이 독이 될 수 있다. 빨리 체육관에 돌아가서 운동을 해야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짧은 휴가를 마친 뒤 2일 팀 훈련을 재개한다.

2012∼2013시즌 프로에 데뷔했지만 2년 만에 은퇴했던 안요한은 지난 시즌 통역으로 한국전력에 돌아왔다.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가빈과 함께한 안요한(사진 오른쪽). 안요한 제공

통역으로 일했던 시간을 통해 코트 위에서 땀 흘리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새롭게 깨달았다고 한다. 과거 V리그를 호령했던 가빈(34)과 지난 시즌 한솥밥을 먹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가빈이 그에게 강조한 세 단어 ‘Recognize(인식하다), Accept(수용하다), Refocus(다시 집중하다)’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을 정도다. 안요한은 이번 대회에서도 외국인 선수 카일 러셀(27)의 통역을 병행했다. 구단은 정규리그 개막 전까지 새 통역을 구할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배구 대표팀 감독을 했던 아버지 안병만 씨를 따라 8세까지 해외에서 살면서 영어를 익힌 그는 은퇴 후 공익근무요원을 하면서 문법 공부를 새롭게 하는 등 통역 준비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안요한은 배구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 권인숙 씨는 1980년을 전후로 배구 여자대표팀 센터로 뛰었다. 형 안재웅 씨는 현대캐피탈 선수 출신으로 스테파노 라바리니 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통역을 맡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아들, 동생, 통역이 아닌 안요한으로 불리게 된 소감을 묻자 의외의 답 이 돌아왔다. “나는 안요한이 아닌 누군가의 요한으로 기억돼도 좋다. 앞에 나서기보단 뒤에서 받쳐주고 도움이 되는 게 나에게 어울린다. 바람이 있다면 그저 한국전력의 안요한으로 기억되고 싶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