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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정권비리 콕 찍어 알려준 추미애의 검찰인사

입력 | 2020-09-03 03:00:00

아들 ‘황제 탈영’ 싸고도는 법무장관
반칙과 특권, 불공정의 추한 상징
정치권력에서 독립한 브라질 검찰처럼
진정한 무사는 곁불을 쬐지 않는다




김순덕 대기자

아들의 ‘황제 탈영’ 의혹을 제기한 야당 의원에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소설 쓰시네” 빈정댔다. 두 달 전엔 “아이가 굉장히 화가 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검찰이 빨리 수사해 진실을 밝히기 바란다고 오만하게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거짓이었다. 집권당 대표 때는 보좌관을 시켜 그 어렵다는 군인 병가를 받아내더니, 법무장관이 돼선 대한민국 검찰까지 딴소리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그 마마보이 같은 아들이 변호사를 동원해 뭐라 설명하든, 군인이 부대 복귀 날 안 가고도 무사한 건 ‘엄마 찬스’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이 땅에 태어난 여자들은 누구나 한때 군인을 애인으로 갖는다. 대한민국 남녀 모두를 분기탱천시킨 반칙이고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동부지검은 고민 많게 됐다. 조국 등 현 정권 인사들을 수사한 검사들을 효수(梟首)하듯 표 나게 좌천시킨 추미애다. 법무장관 아들의 휴가에 문제가 없었다고 수사 결과를 말하면 국민이 안 믿을 것이고,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하면 선혈 낭자한 귀양길을 가야만 한다. 정권이 바뀌기까진 어떤 검찰도 똑같은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브라질은 그런 고민 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전직 대통령 한 명을 부패 혐의로 감옥에 보내고 또 한 명은 탄핵한 이 나라에선 지금도 연방검찰총장이 두려움 없이 현직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수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올해 4월 세르지우 모루 법무장관이 “대통령은 연방경찰에 수사·정보 보고를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연방경찰청장을 경질했다”며 전격 사퇴하자 연방검찰총장이 즉각 수사를 촉구한 것이다.

나는 내 상식을 의심했다. 청와대가 당연히 여기는 정보경찰 보고가 정상 국가에선 직권 남용이고, 사법 방해였던 거다. 더구나 아우구스투 아라스 검찰총장은 작년 9월 대통령이 연방검사들의 3배수 추천을 무시하고 지명한 코드인사였다.

그럼에도 검찰총장이 대통령 권력 앞에 당당한 이유는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이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도 21년이나 우리처럼 군사독재를 겪었고 검찰은 집권세력의 충견이었다. “1988년 민주헌법에서 대통령과 법무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브라질 검찰은 주도적으로 개혁에 나섰다”고 브라질 변호사인 조희문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한다.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대가로 제4의 헌법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은 것이다.

제도가 바뀌어도 문화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처럼 끈끈하고, 챙겨주고 챙김 받는 걸 좋아하며, 권력자는 법 위에 있는 브라질에선 권력형 비리는 일상이었다. 2014년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 비자금 문제가 드러나면서 ‘라바 자투(세차용 고압분사기) 작전’이라는 이름의 대대적 부패 수사가 시작됐다.

2013∼2017년 검찰총장을 지낸 호드리구 자노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부터 자신을 임명한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그리고 미셰우 테메르 전 대통령까지 3명을 기소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7년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기소된 테메르가 “드라마를 쓰고 있네”라며 검찰을 비난하자 자노는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며 맞선 진정한 무사였다.

그럼에도 자기들 역시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은 연방하원은 두 번이나 대통령 기소 안건을 부결시켰다. 자노 총장은 임기 만료 이틀 전인 2017년 9월 15일 또다시 테메르를 기소했다. 결국 테메르는 퇴임 석 달 만인 작년 3월 부패 혐의로 전격 체포됐다. 이 기소장에 의거해서다.

우리나라에선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세력들이 검찰에 더 의존해 왔다는 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집권 정치권력에 충성하는 검찰 권력의 속성이 바뀔 새가 없었다는 것도 비극이다. 스스로 개혁할 동력도, 이유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다가 오늘날 굴욕을 당하는 셈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추미애는 이번 검찰 인사에서 문재인 정권의 비리를 콕 찍어 폭로함으로써 브라질의 모루 장관 같은 내부 고발자가 되고 말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 만료 이틀 전까지 끈질기게 현직 대통령을 기소했던 브라질 검찰총장을 배웠으면 좋겠다.

판사 출신인 추 장관도 현직 대통령 비리를 폭로해 2022년 대통령 감으로 번쩍 뜬 모루 장관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가 라바 자투를 출범부터 이끌어 록스타급 인기를 누린 판사 출신이라는 것을.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