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 파울 루벤스, 비너스와 아도니스, 1635∼1638년경
루벤스가 말년에 그린 이 그림도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신화를 다루고 있다.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의 내용을 토대로 티치아노의 그림을 참조해 그렸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비너스는 잘생긴 사냥꾼 아도니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 위해 관심도 없던 사냥을 취미로 삼았다. 어느 날 함께 갈 수 없는 일이 생기자 비너스는 아도니스에게 위험을 경고하며 절대 사냥을 가지 말라고 한다.
루벤스는 바로 이 장면을 거대한 화폭에 담았다. 붉은 옷을 입은 아도니스는 창을 들고 사냥을 떠나려 하고, 누드의 비너스는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으며 애원하고 있다. 어린 큐피드까지 나서 아도니스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말리고 있다.
아도니스는 여자 말을 들었을까? 그럴 리가. 남자다움을 과시하며 기어이 사냥을 떠났다가 멧돼지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랑하는 연인도, 어린 큐피드도 말렸건만 무모한 자신감 때문에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무모함과 용기는 다르다. 모두가 위험을 경고할 때는 따라야 화를 면할 수 있는 법. 17세기 그림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