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로 긴 두상, 인자한 눈빛과 잔잔한 주름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문화재청 제공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 활동한 승려 희랑대사(希朗大師)를 묘사한 이 조각은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생존했던 고승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이자 가장 오래된 초상 조각이다. 조선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승려로, 해인사 희랑대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고 전한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줘 왕건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해인사에 둔 것으로 전해진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조사에 따르면 작품은 앞면은 건칠로 만들고,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했으며 후대의 변형 없이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칠 기법은 삼베 등에 옻칠을 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기법으로 오랜 시간과 정성이 요구된다.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에서 유행한 기법으로, 국내에 남아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