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 대학의 길] <상> 대학 손발 묶은 교육규제
대학가의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확산하면서 2학기에도 온라인 강의를 이어가는 대학이 많다. 2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한 교수가 동영상 강의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수도권 4년제 대학 교직원 A 씨는 올해 초 진땀 나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교육부가 각 대학에 ‘재택 수업’을 권고한 3월, A 씨 대학 서버는 접속자가 갑자기 폭증해 마비됐다. 수업이 끊기는 사태를 막으려면 당장 수천만 원어치 기기를 사와야 하는 상황. 하지만 정해진 규정에 따라 기안 등의 절차를 밟자니 금방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다급해진 총장이 “급한 불부터 끄자”며 자기 카드를 건넸지만 받아 드는 이가 없었다. 절차를 밟지 않고 총장 카드를 썼다가 교육부 감사에 걸릴까 봐 걱정이 앞선 탓이다. A 씨는 “다른 방법이 없어 일단 그 카드를 들고 서울 용산전자상가로 달려갔다”며 “위급한 상황에서도 감사부터 걱정하는 게 대학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 하루아침에 바뀐 원격수업 기준
대학들이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려 애써도 각종 규제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는데 여전히 대학들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또 감사에 걸리지 않기 위해 수십 년 된 규제를 통과해야 하는 것.
서울 한 사립대 교수는 “1학기 개강에 맞춰 기존 기준대로 영상을 제작했는데 교육부가 3월 첫째 주에 갑자기 ‘1학기에 한해 한시적으로 기준을 완화한다’고 하더라”면서 “교수들이 2학기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혼란스러워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사립대 교수는 “과목이나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온라인 강의 분량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하는데 애초에 일괄적으로 25분이라는 시간을 정해놓은 것부터 희한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대학가에서 불만이 속출하자 교육부는 7월에야 원격수업 비중과 평가 방식 등을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부랴부랴 규제를 일부 풀었지만 교육계에선 ‘한발 늦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간 교육부가 원격수업의 분량, 출석 인정 요건 등을 깨알같이 정해 놓은 탓에 현장에서 원격수업 노하우를 개발할 역량을 쌓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직된 입시 및 학사 제도 역시 대학 혁신에 걸림돌이 된다. 재외국민이나 재직자 같은 특별전형 대상의 경우 코로나19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입시나 학사 규정을 수정해야 하는데, 입시안 사전예고제 등으로 인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 투자하고 싶어도 움찔
서울 대형 사립대에서 1학기 강의를 한 강사 B 씨는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하려고 했지만 불발됐다. B 씨는 “학교 측에서 ‘동시 접속자가 많으면 서버가 마비될 우려가 크니 콘텐츠 제공형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다”며 “명문대에서조차 서버 상태를 걱정할 정도라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설문에 응한 한 사립대 총장은 “등록금은 수년째 묶여 있고, 정부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건을 따라야만 정부 지원금을 주는 식으로 대학을 규제의 늪에 가두고 있다”면서 “대학에 돈이 없어 혁신이 어려워지는 것도 그 자체로 문제지만, 그로 인해 교육당국의 눈치를 보며 모험적인 혁신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이 코로나19를 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부의 대학 평가 기준 자체가 하루빨리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라인 강의를 통해 교수 1명이 동시에 수만 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수 있는데도 기존 교원 확보율을 고수하거나, ‘캠퍼스 없는 대학’이 등장한 지 오래인데 정량적인 교지·교사 확보율을 유지하는 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수연 sykim@donga.com·이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