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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도 국가부채 위기, 내년에 GDP 넘어설듯…“2차대전 이후 처음”

입력 | 2020-09-03 10:13:00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국가부채 시계’라는 것이 있다. 뉴욕의 부동산업자인 세이모어 더스트가 미국의 부채 증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실제 현재 연방정부의 부채 규모를 전광판에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표시되는 숫자는 지금도 1초에 약 1만 달러씩 늘어나면서 현재는 약 27조 달러에 이르고 있다.

1989년에 제작된 이 시계는 원래 타임스퀘어 광장 근처에 있었지만 이후 브라이언트 파크 인근의 국세청 건물 앞 외벽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근처 길가 안쪽의 더 후미진 곳으로 이동했다. 길을 가는 사람들도 시계가 여기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나칠 정도다. 미국 언론들은 “국가부채 시계의 상황은 나랏빚 늘어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는 정치인이나 국민들의 태도를 보여 준다”고 꼬집고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나날이 급증해 이제는 나라 경제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국가부채가 올해 10월 시작되는 내년 회계연도에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3일 밝혔다. GDP보다 빚이 많은 나라는 일본을 비롯해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국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00%를 넘기는 것은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동원했던 2차 세계대전 직후(1946년) 이후 70여 년 만에 처음이다. 그 뒤에는 전후(戰後) 경제호황과 세수증가로 국가부채 비율이 1970, 1980년대 20%대로 급감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빠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막대한 재정이 경기부양에 동원되고 연방정부의 수입은 반대로 줄어들면서 상승 추세가 훨씬 더 가팔라졌다. 올해 국가부채 비율은 98%에 이르고, 내년에는 104.4%까지 오를 것으로 CBO는 보고 있다.

문제는 일반 시민들은 물론 정치권 누구도 이런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지금까지 모두 4차례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켰고 다섯 번째 부양책을 두고 협의 중이다. 공화당은 1조 달러 가량을 생각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3조 달러 이상의 훨씬 더 큰 지출을 요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국가부채의 규모를 줄이는 것은 지금까지 수년 간 양당 의원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며 “앞으로도 고령화 때문에 의료재정 지출이 급증할 전망이라 한동안은 국가부채 증가세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