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TV가 엊그제 밤새 태풍 마이삭이 지나는 길목 곳곳에 방송원들을 파견해 현장 영상을 실시간에 가깝게 보여주는 재난방송을 했다. 생방송이란 거의 없는 북한에선 이례적인 보도였다. 방송원이 비바람에 몸이 흔들리며 생생한 상황을 전하는 모습을 30분가량의 시차를 두고 내보냈다. 북한은 지난주 태풍 바비가 북상할 때도 새벽까지 특보를 내보냈다. 지난해 태풍 링링 때는 정규방송 시간에 특별 편성을 하는 것이었지만 올해는 심야까지 방송시간을 연장해 사실상 24시간 특보체제를 가동한 것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특히 여동생 김여정이 당 선전선동부 실세로 부상한 2014년부터 북한 방송에도 변화의 바람이 두드러졌다. 나이 지긋한 아나운서가 이른바 혁명적 억양과 발성으로 보도문을 읽던 과거와 달리 아나운서의 나이는 젊어졌고 말투도 나긋나긋해졌다. 현장감도 가미하고 입담까지 선보인다. 자막과 그래픽도 한결 세련되게 바뀌었다. 그 내용에서도 당 주력사업의 부진을 비판하는가 하면, 평양시민용 대내방송에선 길거리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단속하는 장면을 담은 ‘현장고발’도 나온다고 한다.
▷생방송, 특히 생중계는 장비 등 기술적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예측불허의 현장 상황 탓에 늘 사고와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사전 녹화하고 검열과 재검토를 거쳐 편집해 내보내는 북한 방송체제에서 생방송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당과 수령을 대변하는 선전선동 수단으로서 북한 방송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 한 변화도 딱 거기까지다. 아버지 김정일도 최은희 신상옥 부부까지 납치하며 영화의 혁신을 이뤄냈다지만 그때뿐이었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