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금기어였던 왕실 개혁 요구 표출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린 성역은 도전받아
장택동 국제부장
최근 태국에서 다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7월 중순 시작된 이후 태국 76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55개 이상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달 16일 방콕 도심에서 열린 집회에는 약 2만 명이 모였다. 이들의 핵심 요구는 현 정부의 퇴진, 헌법 개정, 야권 인사에 대한 탄압 중지 등이다. 이전 시위와 비슷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 먼저 시위의 주체가 달라졌다. 2010년 시위는 빈민·농민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청년·학생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옐로셔츠’의 자녀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고 새 국왕이 즉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태국의 젊은 세대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고 교환한다. 기존의 질서와 권위를 이전 세대만큼 중시하지 않으며, 공정성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들이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3월 총선이었다. 730만 명의 25세 이하 청년들이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다. 신생 정당 퓨처포워드당은 쿠데타 유산 근절, 투명한 정부 등을 내세워 청년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고 일약 원내 제3당이 됐다. 하지만 군사정권의 압박 속에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1월 타나톤 쯩룽르앙낏 퓨처포워드당 대표의 의원직을 박탈했고, 올 2월에는 당을 해산시켰다.
청년세대의 깊은 실망은 정부와 군부를 넘어 왕실을 향했다. 미국 외교협회(CFR) 조슈아 컬랜칙 연구원에 따르면 “마하 와치랄롱꼰 현 국왕은 태국의 정치, 군사, 경제 영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추진하면서 현실 정치의 중심에 서려고 한다”는 점에서다. 또한 “그는 왕세자 때부터 잦은 외유와 스캔들로 인해 전 국왕이 가졌던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컬랜칙은 지적했다.
애초에 각 사회에 성역이 생기게 된 것은 지켜줘야 할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가 흔들리고 역할이 변질되면 도전을 받게 된다. 태국 왕실은 입헌군주제 체제 속에서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존중을 받았다. 여전히 태국에서는 왕실에 대한 외경심이 강하지만 적어도 이번 시위를 통해 왕실이 사회적 논의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다. 그렇게 성역의 견고한 벽은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