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선박은 외롭게 바다에 떠다닌다. 쉽게 구원을 요청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배 안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원들이 아프면 어떻게 될까? 의사가 타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 항해사들이 최소한의 위생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위생 관련 자격을 취득하게 한다. 3등 항해사가 그 담당 사관이다. 3등 항해사는 선박에서 작은 병원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갑자기 작업을 하던 선원이 크게 다쳤다고 선내 병원으로 왔다. 상처 부위가 커서 다섯 바늘 정도 꿰매주어야 빨리 나을 것 같았다. 망망대해에서 진짜 병원의 의사를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담당 항해사인 나는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수술도구를 찾았다. 수술용 바늘은 반달 모양이라서 상처 부위에 집어넣어 실을 빼 올리기가 쉽게 돼 있었다. 어렵지 않게 꿰매주었고, 일주일이 지나서 실밥도 끊어주었다. 막 선박에 승선한 애송이 3등 항해사가 어떻게 수술까지 할 줄 아느냐고 칭찬이 자자했다. 모두 해양대에서 배운 결과물인 것을….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초보 수술을 한 추억이다. 마치 의사가 된 듯 으쓱한 기분을 느꼈다.
선장님에게 1등 항해사인 내가 불찰로 살충제를 뿌렸는데 그 여파로 기름 냄새가 쌀에 스며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보고했다. 영향을 받은 쌀 포대는 폐기 처분을 하고 회사에 끼친 손해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선장님이 일을 잘하려다가 그렇게 된 것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쌀벌레는 사라졌지만 쌀을 못 먹게 만들고 말았다. 선장이나 부선장인 1등 항해사는 모든 것을 잘 알고 만물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회사에 사후 보고를 했다. 이런 경우에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말도록 전 선박에 ‘사고 보고’를 보내 달라고. 이렇게 선원들 간의 경험이 공유되고 바다의 지혜가 쌓이면서 유사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