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태권도 국가대표 오혜리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태권도 67㎏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팬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대표팀은 육체를 가진 국가다. 대표팀이 취해야 할 스타일을 논의할 때 사람들은 종종 국가가 지향해야 할 자세를 논의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자 출신 칼럼리스트 사이먼 쿠퍼는 자기 책 ‘축구 전쟁의 역사’에 이렇게 썼다. 그는 축구 칼럼리스트지만 비단 축구만 그런 건 아니다. ‘극일(克日·일본을 이김) 정신’이 없었다면 한국 스포츠가 단기간에 이렇게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본이 하는 건 우리도 다해야 했다. 일본은 1964년 도쿄(東京) 올림픽 때 ‘맛배기’로 유도를 정식종목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유도는 1972년 뮌헨 대회 때부터 한번도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한국도 88서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내자 똑같은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서울 대회 때 태권도를 시범종목으로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고, 1994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통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만들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됐다는 사실을 알린 1994년 9월 4일자 동아일보 1면. 23년 전 오늘도 북핵이 문제였고, 쓰레기 줄이기가 고민이었다. 동아일보PDF
“만들었다”는 표현을 쓴 건 IOC에서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게 김운용 당시 IOC 부위원장 겸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1931~2017) 개인 능력으로 이룬 성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번 성과가 전체 태권도인들의 단결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김 총재의 IOC 내 정치적 역량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볼 때 국내외 태권도 관계자들의 결집이 어떤 것보다 우선해서 이루어져야 할 과제”라고 평가했다.
김운용 전 WT 총재. 동아일보DB
IOC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을 채택할 때는 서로 엇비슷한 종목 중 하나만 고르는 게 당시 원칙이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식 종목이 되면서 일본에서 정식종목으로 밀던 가라테(空手道)가 밀렸다. 태권도 정식종목 채택이 극일인 이유다.
가라테는 ‘어젠다 2020’에 따라 개최국에서 정식종목 추가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 (2021년에 열릴 예정인) 2020 도쿄 대회 때를 앞두고서야 정식종목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겨루기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IOC는 경기 중 선수가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머리 보호대와 가슴 보호구를 착용하고 경기를 하도록 규칙을 손질하고 나서야 겨루기는 올림픽 정식종목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보호 장비 도입 이후 수비형 전술이 대세로 자리매김하면서 결국 겨루기도 재미없다는 평가가 따라다니게 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태권도는 올림픽 퇴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2013년 올림픽 핵심종목(Core Sports)에 이름을 올리면서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계속 올림픽 종목으로 남게 됐다.
WT는 이 과정에서 링(경기장)을 좁혀 공격적인 경기 진행을 유도하고, 컬러도복을 도입하는 등 태권도를 관중 친화적인 스포츠로 탈바꿈시키려 공을 들였다.
한국 태권도 팬들 관점에서 안타까운 건 갈수록 이점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출전 남자 선수 3명이 모두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대신 오혜리(32) 김소희(26·49㎏급) 등 여자 선수 두 명이 금메달을 따면서 종주국 자존심은 지켰다.
리우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오혜리(왼쪽), 김소희. 리우데자네이루=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오혜리는 리우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뒤 “태권도가 재미없다는 말을 듣는 건 다 안다. 그런 말이 모두 옛말이 될 수 있도록 흥미진진한 경기를 펼치는 데 저부터 앞장서겠다”며 “여러분이 태권도를 많이 아껴주실수록 태권도가 여러분이 더 좋아하는 경기 내용으로 변할 수 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오늘은 1994년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걸 기념하는 ‘태권도의 날’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