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맞먹는 시청률, 여자배구 인기몰이 비결은 지난 시즌부터 강력한 팬덤 형성 이재영-다영 자매 자동차CF 찍고 김연경은 연예인 못잖은 신드롬 내년 올림픽 메달 기대도 불지펴
11년 만에 V리그로 돌아온 ‘배구여제’ 김연경은 여자배구 인기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49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김연경의 유튜브 채널 ‘식빵언니’는 최근 굿즈 티셔츠를 제작해 판매했다. 사진 출처 김연경 인스타그램
11년 만에 V리그로 돌아온 ‘배구 여제’ 김연경(32·흥국생명)의 인기는 정상급 연예인 못지않다. 6월 국내 복귀를 결정한 이후 TV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행사 섭외가 쏟아지고 있다. 김연경은 지난달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약 49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김연경의 유튜브 채널 ‘식빵언니’는 최근 굿즈 티셔츠를 제작했는데 이틀 만에 완판됐다고 한다.
○ 시청률 1%-연봉 1억 원 시대
○ ‘김연경 효과’에 국제 경쟁력도 한몫
여자 배구를 얘기할 때 ‘김연경 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했다는 자부심이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2005∼2006시즌 흥국생명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김연경은 이후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의 무대로 꼽히는 유럽 터키리그에서도 맹활약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김연경이 11년 만에 국내로 돌아오면서 최고 흥행카드가 되고 있다.지난달 공개된 기아자동차 ‘스팅어 마이스터’ 광고에 등장한 쌍둥이 자매 언니 이재영(위 사진)과 동생 이다영.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배구 대표팀 세터 김경희 씨의 딸인 두 선수는 흥국생명에서 함께 뛰고 있다. 스팅어 마이스터 광고 화면 캡처
탄탄한 국제 경쟁력도 팬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4강에 진출했던 여자 배구 대표팀(세계랭킹 10위)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1년 도쿄까지 3개 대회 연속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남자 배구 대표팀(세계 20위)과 대조를 이룬다. 여자 대표팀은 주장 김연경의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이 될 도쿄 대회에서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동메달) 이후 다시 메달에 도전한다. 리우 올림픽 때 여자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이정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리우 대회를 기점으로 확실히 여자 배구의 인기가 높아졌다. 특히 인접한 일본에서 열리는 도쿄 대회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 평준화로 짜릿한 승부가 많아진 것도 여자 배구의 인기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자부는 6개 구단이 모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한 반면 남자부는 7개 구단 중 4개 구단만이 챔피언 트로피를 들었다. 배구 팬 전광호 씨(38)는 “최근 구단들이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코트에서 볼 수 없었던 선수들의 색다른 모습을 전하면서 좀 더 애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신인 육성-신생팀 창단’ 과제
지속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면 지금의 인기는 거품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특히 미래를 위한 선수 육성이 중요하다. 올해만 해도 안산 원곡고 배구부가 해체하면서 현재 여자 배구 고교부는 17개만 남았다. 이와 함께 유소년 선수들의 기량도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학습권 보장이 강조되면서 학생 선수들의 기초 훈련이 턱없이 부족해졌다는 것.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한창 기본기를 배워야 할 나이에 하루에 채 2시간을 훈련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기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우수 자원이 줄어들면서 신인 드래프트 선발 비율은 2018∼2019시즌 68%에서 2019∼2020시즌 49%로 떨어졌다. 구단별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와 별도로 아시아 선수를 추가로 보유하는 ‘아시아 쿼터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조원태 KOVO 총재가 공약으로 내건 ‘신생팀 창단’도 과제다. 구단 수가 늘어나면 여자 배구의 외연도 넓어질 수 있다. 지난해 한때 제7구단 창단이 가시화됐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박미희 감독은 “단순히 ‘보는 배구’가 아닌 ‘즐기는 배구’가 되기 위해선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의 꾸준한 협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 미도파, 현대건설 라이벌 구도 속에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여자 배구는 오랜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팬들의 외면 속에 프로배구 남자부 경기의 오프닝 게임이나 들러리 신세인 적도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여자 배구 황금기’는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