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마음만 모이자” 언택트 한가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가위도 언택트 분위기
“결혼하고 23년 만에 처음이에요. ‘차례상 없는 한가위’는요.”
전남 나주에 사는 간호사 김현주 씨(44)는 요즘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싱숭생숭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래저래 분위기가 안 좋아졌는데 추석은 한 달도 남지 않았기 때문. 서울과 광주 등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은 며칠 전 긴 논의 끝에 결국 올해 추석은 모이지 않기로 했다. 요즘 같은 상황에 장 보는 게 조심스럽고 음식재료 값도 천정부지로 뛰어 차례도 생략하기로 했다.
김 씨는 “함께 얼굴 보기 쉽지 않은데 명절조차 가족이 모이지 못해 아쉽고 막막하다”며 “보건소에서 일해 올 초부터 힘들었는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걸로 위안을 삼겠다”고 했다. 그런 부인이 안쓰러웠는지 남편 홍경필 씨(48)는 “고생한 와이프가 평소 좋아하는 ‘스파게티’라도 만들어 대접하겠다”며 다독거렸다.
○ “서울 사는 큰딸은 안 오는 게…”
특히 가족 중에 고령자나 환자가 있는 집안은 추석이 반갑지만은 않다. 수도권에서 내려올 가족이 있을 경우엔 더 생각이 많아진다. 김 씨 가족도 추석 따로 나기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폐질환을 앓고 있는 시아버지 때문이었다. 친지들도 “요새 서울이 난리인데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딸은 안 오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강원 속초가 고향인 박예슬 씨(26) 가족도 올해는 차례를 생략하기로 했다. 평소 박 씨 가족은 설날 추석이면 할아버지 댁에 30명이 넘는 가족, 친척이 모였다. 하지만 전국에 퍼져 있다가 한데 모이는 게 아무래도 위험해 보였다. 결국 최소 인원만 모이되 차례는 지내지 말고 조상 산소만 찾아 성묘하기로 했다. 박 씨는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발령되자 할아버지가 먼저 차례를 건너뛰자고 제안하셨다”며 “가족끼리 모이더라도 마스크 착용 등에 신경 쓰자는 얘기도 미리 나눴다”고 했다.
고속버스 승차권 예매를 총괄하는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도 “승차권 판매에는 제한을 두지 않되, 가급적 통로나 운전기사 뒷자리는 피하고 창가 좌석만 구매해 달라”고 권고하고 있다. 기차나 버스 모두 차편을 증설한다고 해도 자리가 줄어들어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비행기는 통상적으로 명절 티켓은 약 1년 전부터 예약하는 경우가 많아 이제 와서 좌석 수를 조절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기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필수로 하고 방역에 만전을 기해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어떤 가족들에겐 이런 고민조차 부럽기도 하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은 진즉에 추석 귀향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최성림 씨(28)는 일찌감치 가족들에게 일본에 남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한국에 오려면 최소 2주 동안의 자가 격리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직장 다니는 처지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 씨는 “우리는 추석이면 친가, 외가를 다 찾아뵙는데 최소한으로 꼽아 봐도 접촉자가 15명이 넘는다. 차라리 만나러 가지 않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위생제품을 추석 선물로… 벌초 대행도 인기
손수 해오던 벌초 작업을 올해만큼은 대행업체에 맡기려는 시민도 많다. 전북 전주에서 벌초 대행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현석 씨는 “지난해 추석보다 이미 예약 건수가 25% 정도 늘어났다”며 “아무래도 벌초를 가면 인근 산소에 모인 다른 가족과 접촉이 생길 수 있으니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전에 있는 A벌초대행업체도 지난해 대비 예약 건수가 30% 정도 늘었다고 한다. 업체 대표는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워진 점을 감안해 평소보다 저렴한 가격에 벌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 등에게 영상통화와 화상회의 등을 알려주는 집도 많아졌다. 사정상 고향에 가기 어려워졌지만 얼굴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경남 사천이 고향인 김모 씨(49)는 “부모님이 코로나19로 가지 못한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시면서도 굉장히 쓸쓸해하시는 게 느껴졌다”며 “손자들 얼굴이라도 보여드려야겠단 생각에 화상회의 프로그램 까는 걸 알려드렸다. 많이 어려워하셨지만 그래도 잘한 것 같다”고 전했다.
코로나19는 한가위 선물 풍속도도 바꾸고 있다. 그간 명절 선물은 과일이나 고기 등 식품이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는 마스크나 손세정제 같은 위생용품이나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관심이 크게 올랐다.
코로나19에다 수해, 태풍까지 연달아 고초를 겪는 농어민을 돕겠다는 ‘착한 선물’도 최근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에 사는 조모 씨(55)는 평소 선택하던 참기름, 가공육 등으로 구성된 선물세트 대신 황태와 전복 등 수산물을 한가득 구매했다. 조 씨는 “고향이 전남이라 그런지 지역 어민들 피해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며 “주변 지인들에게 완도산 전복을 선물해 ‘고향의 맛’이라도 나누려 한다”고 했다.
전채은 chan2@donga.com·김태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