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3월 13일
플래시백
서울 을지로2가에 있던 동양척식회사 경성지사.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수탈기관으로, 1926년 나석주 의사의 폭탄 투척을 받았다. 광복 이후 신한공사, 내무부 등이 사용하다 1972년 철거된 뒤 이 자리에 현재 하나금융그룹 명동지사가 된 한국외환은행 본점이 들어섰다.
‘조선 인민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명분으로 출범한 동척은 형식상 한일 양국이 함께 세운 한반도 최초의 주식회사였습니다. 자본금 1000만 원을 모으려고 50원짜리 주식 20만 주를 발행했는데 이토 히로부미 통감부는 대한제국 정부에 6만 주를 인수하라고 강요했고, 돈 없는 한국정부는 대신 땅 1만7714정보(175㎢)를 내놓았습니다. 이 가운데 논이 70%나 됐습니다. 양국 왕실에서 얼마간 주식을 인수하고 남은 13만여 주는 두 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주 청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묘합니다. 일본에서는 광적인 인기를 모아 35대 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 조선에선 응모 주수가 목표의 2%에도 못 미쳤습니다. 이미 이때부터 동척의 실체를 꿰뚫어봤던 건 아닐까요?
동아일보는 기사뿐 아니라 1면 독자투고 만평 ‘동아만화’를 통해서도 동척의 만행을 끊임없이 고발했다. ①1923년 관동대지진 때 헐벗은 조선 이재민 동포에게 담요를 주면서, 뒤로는 추수한 쌀을 가차 없이 착취하는 표리부동한 동척을 묘사했다. ②기아 상태에 놓인 황해도 봉산군의 조선인 소작인들과, 이들로부터 빼앗은 집과 옷, 소작료를 깔고 앉은 배부른 동척을 대비시켰다. ③자기 마음에 드는 농민에게만 소작권을 주는 농감의 횡포를 그린 만평. 지주를 대신해 소작인을 관리 감독했던 농감도 많은 곳에서 원성의 대상이 됐다.
동아일보는 창간 직후부터 동척의 수탈을 고발하고 이에 대한 민중의 항거를 낱낱이 보도했습니다. 그러다 1922년 3월 초 동척이 방만 경영으로 돌려받지 못하게 된 대출금이 수천만 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일본에서 나오자 3월 13일자 사설 ‘동척 폐지를 논하노라’를 통해 처음으로 동척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사설은 동척의 과다한 결손이나 회사채 발행은 접어두더라도 우리의 비옥한 전답을 이주 일본인에게 넘기는 것이 과연 조선 인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정책인지 묻고, 제국주의와 침략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사람의 취할 바가 아니라고 꾸짖었습니다.
1922년 4월에는 전남 강진군의 한 농민이 이주 일본인에게 땅을 뺏긴 뒤 그를 찾아가 그동안 논을 일구는 데 들어간 비용이라도 달라고 했다가 오히려 몽둥이로 얻어맞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같은 달 24일자 사설 ‘동척 폐지를 재론하노라’를 실어 ‘조선 인민의 행복을 증진하려면 차별대우를 철폐해야 하고, 차별대우를 철폐하려면 조선인을 내쫓는 동척을 폐지해야 한다’고 다시 요구했습니다. 그 해 황해도 지역의 수재로 재령평야 3000정보가 물에 잠기고 1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동척이 무너진 둑을 개축하는 데 조선 소작인들을 반강제로 동원하자 동아일보는 ‘횡설수설’에서 ‘땅 뺏고 노동까지 빼앗아서는 동척이 아니라 도척(盜¤)’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동척의 횡포가 계속되자 1922년 10월부터는 논조가 달라집니다. 10월 24일자 사설 은 ‘어찌 일본인만 살기 위해 토지를 획득하고, 조선인은 죽기 위해 지옥에 빠지겠는가’라며 조선 소작인들에게 생존과 생명을 위해 쟁투를 선포하자고 했습니다. 사흘 뒤 ‘이천만 형제에게 격(檄)하노라’ 제하의 사설은 ‘조선 소작인은 쫓겨나는 것은 그들이 조선인이기 때문이므로, 같은 조선인인 이천만 민중이 힘을 모아 생존의 쟁투를 개시해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원문
東洋拓殖會社(동양척식회사)
撤廢(철폐)를 論(논)하노라
本月(본월) 六日(육일) 東京(동경) 電(전)을 據(거)하건대 東拓(동척) 現下(현하)의 財政(재정)이 其(기) 極(극)에 達(달)하야 資本金(자본금) 五千萬(오천만) 圓(원)으로 社債(사채)가 旣(기)히 一億萬(일억만) 圓(원)을 突破(돌파)코저 하며 放漫(방만) 投資(투자)한 結果(결과) 貸附金(대부금) 回收不能(회수불능)이 果然(과연) 幾千萬(기천만) 圓(원)에 達(달)할지 難測(난측)이라 하며, 그 우에 社內(사내)의 醜狀(추상)을 掩過(엄과)키 爲(위)하야 消費(소비)한 金額(금액)이 不少(불소)하다 하야 그 暴露(폭로)된 醜狀(추상)과 그 缺損(결손)된 事實(사실)이 株主總會(주주총회)에 大(대) 問題(문제)가 되리라 하며 繼(계)하야 政府(정부)는 監督上(감독상) 責任(책임)으로 議會(의회) 問題(문제)까지 되리라 함은 本報(본보)가 이미 報道(보도)하얏스며,
究竟(구경) 株主總會(주주총회)를 經過(경과)하며 議會(의회) 問題(문제)를 待見(대견)키 前(전)에는 判明(판명)할 수 업스며 了解(요해)키 難(난)하나 吾人(오인)은 此際(차제)에 臨(임)하야 同社(동사) 資本(자본)의 損益(손익)과 營業方針(영업방침)의 浮實(부실)은 窺知(규지)코저 아니하며 批評(비평)코저 아니하고 根本的(근본적)으로 東拓(동척)의 目的(목적)과 精神(정신)의 不合理(불합리) 됨을 論述(논술)하야 그 撤廢(철폐)를 要求(요구)코저 하노라.
今(금)에 東拓(동척)의 事業(사업) 經營(경영)의 內容(내용)을 一覽(일람)하건대 一(일)은 拓殖(척식) 上(상) 必要(필요)한 資本(자본) 供給(공급)이며, 二(이)는 同(동) 農業(농업), 水利事業(수리사업) 及(급) 土地(토지)의 取得(취득) 經營(경영) 處分(처분)이며, 三(삼)은 同(동) 移住民(이주민)의 募集(모집) 及(급) 分配(분배)며, 四(사)는 移住民(이주민)을 爲(위)하야 必要(필요)한 建築物(건축물)의 築造(축조) 賣買(매매) 及(급) 貸借(대차)며, 五(오)는 移住民(이주민) 及(급) 農業者(농업자)에 對(대)한 拓殖(척식) 上(상) 必要(필요)한 物品(물품)의 供給(공급) 及(급) 그 生産(생산)된 物品(물품)의 分配(분배)며, 六(육)은 委託(위탁)에 因(인)한 土地(토지)의 經營(경영) 及(급) 管理(관리)며, 七(칠)은 其他(기타) 拓殖(척식)하기 爲(위)하야 必要(필요)한 事業(사업)의 經營(경영)이며, 八(팔)은 定期預金(정기예금)으로 本店(본점)을 東京(동경)에 置(치)하고 支店(지점)을 朝鮮(조선) 各地(각지)에 置(치)함이라.
일로 보면 東拓(동척)이 日本人(일본인) 移住(이주)에 對(대)하야 如何(여하)히 奬勵(장려)하며 如何(여하)히 保護(보호)함을 可知(가지)할 것이요, 實際上(실제상) 成績(성적)으로 見(견)하면 明治(명치) 四十三年(사십삼년)으로부터 大正(대정) 九年(구년)까지 十日年(십일년) 間(간)의 移民(이민) 收容(수용)이 戶數(호수)로 約(약) 四千(사천) 戶(호), 人口(인구)로 約(약) 二萬(이만) 人(인), 讓渡(양도) 面積(면적)이 八千餘(팔천여) 町步(정보)며, 朝鮮(조선) 全體(전체) 耕作地(경작지) 四百四十九萬五千四百七十八(사백사십구만 오천사백칠십팔) 町步(정보)에 對(대)한 東拓(동척) 所有地(소유지)가 七萬五百九十二(칠만오백구십이) 町步(정보)라 함은 統計(통계)가 說明(설명)하는 바라.
이것은 東拓(동척)에 限(한)하야 그러함이오, 그 外(외) 他(타) 個人的(개인적) 經營(경영)으로 移民(이민)을 奬勵(장려)하며 土地(토지)를 買收(매수)함은 勝道(승도)할 수 업스며 枚擧(매거)키 難(난)하도다.
如此(여차)한 現狀(현상)을 目睹(목도)하고 到來(도래)의 慘況(참황)을 推想(추상)할 時(시)에 朝鮮(조선) 人民(인민)이 된 者(자)는 如何(여하)한 苦痛(고통)이 右(우)하겟스며, 如何(여하)한 煩悶(번민)이 有(유)하겟나뇨.
或者(혹자) 云(운)하되 日本(일본) 移民(이민)의 朝鮮(조선)에 對(대)한 現況(현황)은 十一年(십일년) 間(간)에 約(약) 二萬(이만) 人(인)에 不過(불과)하니 極(극)히 僅少(근소)한 것이며, 東拓(동척) 所有(소유)가 朝鮮(조선) 全部(전부)에 對(대)하야 六分三厘六毛(육분삼리육모) 弱(약) 占領(점령)에 不過(불과)하니 極(극)히 貧弱(빈약)한 것이며, 日本(일본) 本土(본토) 人口(인구)가 一(일) 方里(방리) 平均(평균) 一千九百八十九(일천구백팔십구) 人(인)에 대하야 朝鮮(조선) 人口(인구)가 一(일) 方里(방리) 平均(평균) 一千二百八(일천이백팔) 人(인)이라 아즉도 七百八十一(칠백팔십일) 人(인)의 差異(차이)가 有(유)하니 收容(수용)할 餘裕(여유)가 잇스니 憂慮(우려)할 바가 아니라 하나니 이는 實際(실제) 狀況(상황)에 不通(불통)한 愚論(우론)이며, 事實(사실) 證明(증명)에 違背(위배)된 悖說(패설)이라. 土壤(토양)이 合(합)하야 泰山(태산)이 되며 細流(세류)가 聚(취)하야 大河(대하)를 成(성)한 것이라.
逐年(축년)의 移住(이주)와 巨額(거액)의 資金(자금)이 結局(결국) 如何(여하)한 狀態(상태)를 現出(현출)할 것이며, 또한 日本(일본) 本土(본토) 人民(인민)은 商工業(상공업)이 發達(발달)한 結果(결과) 外國(외국)의 富(부)를 輸入(수입)하야 農業(농업)에 依賴(의뢰)치 아니하야도 그 生活(생활)이 ¤厚(풍후)하나 朝鮮(조선) 人民(인민)에 至(지)하야는 所恃(소시)할 바 農産物(농산물)이라 일로 하야 衣(의)하며, 일로 하야 食(식)하며, 일로 하야 賣買(매매)하며, 일로 하야 交換(교환)하되 ¤歲(풍세)에도 困難(곤란)을 免(면)치 못하며 凶年(흉년)이면 飢饉(기근)이 滋甚(자심)한 것은 多年(다년)의 經況(경황)이라.
南方(남방)에 肥沃(비옥)한 田土(전토)를 失(실)하고 北方(북방)에 瘠薄(척박)한 生活(생활)을 不堪(불감)하야 老弱(노약)을 負(부)하며 幼少(유소)를 抱(포)하고 蒙古(몽고) 沙漠(사막)과 滿洲(만주) 塵野(진야)에 流離(유리) 彷徨(방황)하는 民衆(민중)이 月(월)로 幾百(기백) 名(명), 年(년)으로 幾千(기천) 名(명), 幾萬(기만) 名(명), 幾十萬(기십만) 名(명), 幾百萬(기백만) 名(명)에 達(달)하야 哀號(애호)하며 悲叫(비규)하는 것이 그 原因(원인)이 何(하)에 在(재)하며 그 理由(이유)가 何(하)에 在(재)하뇨.
日本政府(일본정부)가 旣(기)히 朝鮮銀行(조선은행)과 殖産銀行(식산은행)을 設(설)하야 金融權(금융권)과 商工權(상공권)을 純(순) 日本人(일본인)으로만 獨占(독점)케 하고 尙此(상차) 不足(부족)하야 마자 나문 土地權(토지권) 耕作權(경작권)까지 東拓(동척) 會社(회사)로 掌握(장악)케 하는 것은 朝鮮民族(조선민족)에 對(대)한 待遇(대우)가 너무도 苛酷(가혹)하며 그 處置(처치)가 너무도 峻烈(준열)하도다. 이것이 東洋平和(동양평화)를 維持(유지)하는 道理(도리)며, 이것이 朝鮮(조선) 人民(인민)의 幸福(행복)을 增進(증진)하는 政策(정책)인가.
元來(원래) 移民政策(이민정책)은 荒蕪地(황무지)나 富饒國(부요국)에 行(행)할 것이라 幾千(기천) 年間(년간) 開發(개발)된 土地(토지)와 勞銀(노은)이 低廉(저렴)한 朝鮮(조선)에 强然(강연)히 土地(토지)를 買收(매수)하여 無理(무리)로 移住(이주)를 奬勵(장려)하는 것은 朝鮮(조선) 人民(인민)의 生活(생활)을 威脅(위협)하는 것이며, 朝鮮(조선) 人民(인민)의 感情(감정)을 衝突(충돌)케 하는 것이라.
東拓(동척) 會社(회사) 總裁(총재) 石塚英藏(석총영장) 君(군)의 師團(사단) 增設論(증설론)은 그 理由(이유)가 那邊(나변)에 在(재)함을 吾人(오인)은 不知(부지)하거니와 朝鮮(조선) 人民(인민)에 朝鮮(조선) 土地(토지)에서 空虛(공허)할 만큼 移民(이민)을 奬勵(장려)하야 萬一(만일) 朝鮮(조선) 人民(인민)의 反感(반감)이 激烈(격렬)하는 同時(동시)에는 兵力(병력)으로 威壓(위압)하며 鎭服(진복)함을 豫想(예상)함인가. 그러타하면 正義(정의)의 無視(무시)가 極端(극단)이며 人道(인도)의 悖戾(패려)가 徹底(철저)하도다.
世界(세계)의 潮流(조류)가 懸殊(현수)하고 人民(인민)의 自覺(자각)이 增進(증진)하는 今日(금일)에 在(재)하야 依然(의연)히 帝國主義(제국주의)를 實行(실행)하며 侵略政策(침략정책)을 固執(고집)하는 것은 者(자)의 取(취)할가 아니라 平和(평화)를 維持(유지)하며 共榮(공영)을 希望(희망)하는 點(점)에 잇서서 東洋拓殖(동양척식)의 撤廢(철폐)를 一言(일언)하노라.
현대문
동양척식회사
폐지를 논하노라
이달 6일 도쿄 발 전신에 따르면 동양척식회사의 현 재정이 극에 달해 자본금 5000만 원에 회사채 발행액이 이미 1억 원을 넘으려 하며 방만한 투자의 결과로 대출금 회수불능이 과연 몇 천만 원에 이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며, 그 위에 회사 내부의 추태를 숨겨 넘기기 위해 쓴 돈이 적지 않아 이미 드러난 추태와 결손 사실이 주주총회에서 큰 문제가 될 것이라 하며, 이어 정부는 감독 책임으로 의회에서도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사실은 본보가 이미 보도했으며,
이에 대해 동척 스즈키 지점장의 부인하는 발언과 히토미 이사의 설명이 있었지만 아직도 그 결손 사실과 떠도는 추태에 대해서는 사회에 불안이 오고가며, 세인의 의심이 흐릿해졌다 짙어졌다 하는 게 사실이다.
궁극적으로는 주주총회를 거치고 의회 문제를 기다려보기 전에는 판명할 수 없고 자세히 납득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이 기회에 동척의 자본 손익과 영업방침의 적정 여부를 들여다보거나 비평하려 하지는 않겠다. 다만 근본적으로 동척의 목적과 정신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논술해 그 폐지를 요구하고자 한다.
이에 동척의 사업 경영의 내용을 훑어보자면 ①은 척식에 필요한 자본의 공급 ②는 척식에 필요한 농업, 수리사업 및 토지의 취득·경영·처분 ③은 척식에 필요한 이주민의 모집 및 분배 ④는 이주민을 위해 필요한 건축물의 축조·매매·대차 ⑤는 이주민과 농민에 대해 척식에 필요한 물품의 공급 및 그 생산된 물품의 분배 ⑥은 위탁 토지의 경영 및 관리 ⑦은 기타 척식을 위해 필요한 사업의 경영 ⑧은 정기예금으로 본점을 도쿄에 두고, 지점을 조선 각지에 둔다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동척이 일본인 이주를 얼마나 장려하며, 이주 일본인들을 얼마나 보호함을 가히 알 수 있다. 실제 실적을 보면 1910년부터 1920년까지 11년간 이민에 따른 수용이 약 4000채, 인구로는 약 2만 명, 양도 면적이 8000여 정보이며, 조선 전체 경작지 449만5478정보 가운데 동척 소유지가 7만592정보에 이르는 것은 통계가 설명하는 바이다.
이것은 동척에 한해 그런 것이요, 그 외에 개인적으로 이민을 장려하며 토지를 매수한 것은 도리를 뛰어넘는다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열거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을 목도하고 다가올 참상을 미루어 짐작할 때 조선 인민 된 자는 어떤 고통이 이보다 강하겠으며, 어떤 번민이 더 있겠는가.
누군가는 말하되 일본인의 조선 이민 현황이 11년 동안 약 2만 명에 불과하니 극히 적은 것이며, 동척 소유 토지가 조선 땅 전부의 약 6.36%를 점하는데 그치니 극히 빈약한 것이며, 일본 본토 인구가 사방 1리 평균 1989명인 반면 조선 인구는 평균 1208명이기 때문에 아직도 781명의 차이가 있어 수용할 여유가 있으니 우려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주장이며, 사실 증명에 위배된 어긋난 말이다. 한줌 흙이 합쳐져 태산이 되며,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것 아닌가.
매년 계속되는 일본인 이주와 거액의 자금유입이 결국 어떤 상태를 드러낼 것이며, 일본 본토 인민은 상공업의 발달로 외국의 부를 수입해 농업에 의존하지 않아도 그 생활이 넉넉하지만 조선 인민은 믿는 바는 농산물뿐이라서 이것으로 먹고, 이것으로 매매하며, 이것으로 교환하지만 풍년에도 곤란을 면치 못하며 흉년이면 기근이 극심한 것은 오랜 기간 겪은 상황이다.
남방의 비옥한 전답을 잃고 북방의 척박한 생활을 감히 이겨낼 수 없어 약한 부모를 등에 지고 어린 아이를 보듬고 몽골 사막과 먼지 이는 만주벌판에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민중이 월 수백 명, 연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에 달해 슬퍼 부르짖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일본정부가 이미 조선은행과 식산은행을 만들어 금융권과 상공권을 순 일본인으로만 독점하게 하고 이도 부족해 마저 남은 토지권과 경작권까지 동척이 장악하게 하는 것은 조선민족에 대한 대우가 너무도 가혹하며 그 처사가 너무도 엄하고도 매서운 것이다. 이것이 동양평화를 유지하는 도리이며, 이것이 과연 조선 인민의 행복을 증진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는가.
원래 이민정책은 황무지나 부유한 나라에 행하는 것이니, 수천 년 동안 일궈온 토지와 품삯이 싼 조선에서 강제로 토지를 사들여 무리하게 이주를 장려하는 것은 조선 인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것이며, 조선 인민의 감정에 맞서는 것이다.
동척 총재 이시즈카 에조가 ‘사단 증설론’을 주장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조선 인민의 조선 토지에 공허한 이민을 장려해 만일 조선 인민의 반감이 격렬해질 때는 병력으로 위압하고 진압해 복종시킬 것을 예상해서인가. 그렇다 하면 이는 극단적으로 정의를 무시하는 것이며 인간의 도리가 철저하게 뒤틀린 것이다.
세계의 조류가 현격히 다르고 인민의 자각이 날로 높아가는 오늘날에 있어서 전과 다름없이 제국주의를 실행하며, 침략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사람이 취할 바가 아니다. 평화를 유지하며, 공영을 희망한다는 점에 있어 동양척식회사의 철폐에 대해 한 마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