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제조업체 박모 사장 제공
광주 북구 첨단과학산업단지에서 의료기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사장(48)은 지난달 7일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시간당 5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심 곳곳이 물에 잠겼고 공장도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튿날 새벽 직원의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공장은 이미 무릎 높이까지 물이 들어차 있었다. 박 사장은 “기계와 장비들이 모두 물에 젖어 공장 가동을 할 수가 없었다”며 “1억 원가량의 재산 피해를 봤다”고 했다.
첨단과학산업단지에 입주한 142개 업체들은 이틀간 500mm 넘게 내린 집중호우로 350억 원 정도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자체 추산한다. 결국 지난달 25일 광주 북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이곳 중소기업들은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박 사장은 “정부가 피해 복구 비용을 농림, 축산 시설에만 준다니 답답하다”고 했다.
긴 장마와 폭우로 전국 38개 시·군·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가운데 농림축수산업 위주로 정부의 피해 복구 지원이 이뤄지다보니 혜택에서 벗어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와 달리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혜택은 적은 편이다. 연 1%대 금리로 긴급경영자금을 대출해주고, 세금과 전기요금을 낮춰주거나 납부를 유예해주는 게 전부다. 광주시에서 20년가량 철물점을 운영해온 이동의 씨(62)는 “이렇게 비 피해를 입은 적은 처음”이라며 “소상공인은 최대 7000만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빚을 더 내기 힘들다”고 했다.
정부는 특정 업종의 피해 복구에만 국고를 지원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재정 여건을 감안해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정부 관계자는 “1996년 법개정으로 국고 지원 대상이 지금처럼 정해진 뒤 재해가 있을 때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불만을 토로해왔지만 재정의 한계가 크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재난 피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점도 정부가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기후변화 영향으로 2020~2060년 발생할 자연재난 피해액은 연간 최대 11조 원이며, 이에 따라 지급할 재난지원금은 8300억 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타격이 큰 소상공인이나 영세 중소기업들을 재해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정부는 사회 약자인 농·어민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소상공인이나 영세 중소기업 역시 취약계층인 건 마찬가지”라며 “농어민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종=남건우기자 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