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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손을 괴롭힌 혓바늘[이상곤의 실록한의학]〈98〉

입력 | 2020-09-07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한의학에서 말하는 화증(火症)은 성격이 급한 이에게 주로 생긴다. 숙종은 얼마나 화를 냈는지 신하들이 ‘벼슬 얻는 것을 형벌처럼 여기고 왕을 보기가 무서워 벌벌 떨었다’고 한다. ‘마음이 답답하여 숨쉬기가 곤란하고 밤새도록 번뇌가 심하여 수습할 수가 없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숙종의 화증은 입속의 타액을 부글부글 끓여 마르게 하면서 입 안에 부스럼을 유발했다. 구창(口瘡)이 생긴 것이다. 제조들은 숙종에게 보비(補脾)와 청화(淸火)의 치료법를 처방했다. 보비는 비장이 약해져 생긴 소화불량 등의 증상을 약물을 써 치료하는 처방이고 청화는 약물로 화를 다스리는 치료법이다. 이 처방 덕택인지 이후 숙종의 구창은 씻은 듯 사라졌다.

사도세자 장조의 첫째 아들인 의소 세손은 세 살 때 죽었다.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던 의소 세손은 피부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았지만 세 살이 되던 해 갑자기 젖을 빨지 못하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어의들은 혓바늘이 돋아 젖을 빨지 못하는 증상에 주목했다. 영양실조를 두려워한 것. 구창에 대한 최후로 제시된 치료법은 ‘무가산(無價散)’이라는 처방이었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값을 가늠할 수 없다’는 뜻이지만 실제는 개와 고양이, 돼지의 분변을 말려서 태운 것이었다. 구창의 원인을 몸에 쌓인 열로 보고, 동물의 분변이 대부분 열을 내린다는 점에 착안한 마지막 대응이었다.

구창은 혀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참기 힘든 통증이 따른다고 해서 혓바늘이라고도 불린다. 피로, 스트레스, 위장 장애, 빈혈 등에 의해서 생기며 종류도 다양하다. 구내염은 여러 종류지만 아프타성 구내염은 가장 빈번히 볼 수 있는 궤양성 질환이다. 입술, 볼, 혀 등의 점막에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작은 궤양이 생긴다. 구내염의 원인은 타액 감소와 관련이 깊다. 타액이 구강 점막의 윤활유 역할을 담당해 보호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타액은 하루에 약 1500cc가 분비된다. 4분의 3은 악하선(턱밑샘)과 설하선(혀밑샘)에서, 4분의 1은 이하선(귀밑샘)에서 만들어진다. 소화효소나 노화를 예방하는 타액선 호르몬은 주로 이하선에서 분비된다. 이하선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음식물을 씹을 때 반드시 입술을 다물고 천천히 오래 씹어야 타액이 많이 분비된다. 음식물을 꼭꼭 잘 씹어서 넘겨야 건강해진다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타액 속에는 전분을 분해하는 소화효소와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 신체를 지키는 면역 글로불린과 노화 예방 효과가 있다는 타액선 호르몬 등이 포함돼 있다. 한의학에서는 침샘을 예천(醴泉)이라고 한다. 단물이 흐르는 샘이라는 뜻이다.

침이 말라 입 냄새가 생길 때는 매실을 사용한다. 매화는 얼음과 눈을 흡수해 스스로를 적시고 봄이 오기 전에 꽃을 피운다. 신맛과 봄기운으로 침이 나오게 해 기를 순행하게 만들어 침과 진액을 만들어낸다. 구창에 쓰는 약재로 가장 유명한 것은 붉나무벌레집(오배자)이다, 가루를 입에 뿌려주면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천초(산초)로 담은 술이 좋다. 입에 머금었다 뱉으면 구내염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