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부인해도 김종인 출마설 계속되는 현실 씁쓸해하기 전에 젊은 주자들 반성부터 해야
이승헌 정치부장
당내에선 하태경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공개적으로 꺼냈다. 하 의원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승리로 이끌면 김 위원장은 대선 후보군 중 하나가 된다”며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여권 유력 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얼마 전 그의 출마설에 대해 “그런 얘기를 바람결에 들은 적은 있다. 가능성이야 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출마설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 바 있다. 하지만 이게 진심인지를 놓고 서로 다른 말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지난달 31일 취임 100일을 앞두고 가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필자는 김 위원장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내년 보궐선거까지만 약속하고 (비대위원장으로) 왔기 때문에 그 다음 얘기에 대해서는 말할 게 없다.”
―상황이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 않나.
“난 그 약속 지키려고 한다. 나는 상황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당원들이 (대선에서 당신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지 않나.
―건강이 좋아 보이시는데….
“여기 와서 비대위원장을 하니깐 이러저러한 얘기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건 날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다. 나는 (뭐에) 집착해서 인생을 산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떠날 시점이 언제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차기 대선 출마 같은) 그런 얘기는 안 물어봐도 된다.”
몇 차례의 문답에도 그의 속내를 똑 부러지게 알기는 힘들었다. 노욕(老慾)이라는 일각의 인식을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차기 대선과 완전히 선을 긋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몇 가지 힌트가 있었다. 우선 김 위원장은 이 문답을 하면서 유독 표정이 밝았다. 필자는 ‘대선 출마’라는 표현을 꺼내지 않았는데 김 위원장은 대선에 대해 말했다. 인터뷰 중 ‘상황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것도 눈에 띄었다. 사실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새누리당, 2016년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올해 미래통합당에 합류해 국민의힘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사에서 일찍이 없던 팔순 노정객의 대선 출마설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필자는 그 답을 김종인 대망론을 언급하는 보수 야권 인사들의 표정에서 찾는다. 그의 출마 가능성을 거론하는 야권 인사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씁쓸함이 배어 있는 복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기본소득제, 광주 5·18 무릎 사과 등 한 박자 빠른 김 위원장의 정치적 감각을 인정하면서도, 팔순의 원로에게 당의 재활에 이어 차기 대선 구도까지 맡길 수도 있는 보수야권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지금 야권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원희룡 제주지사, 유승민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 등은 김종인의 한 세대 아래다. 이들은 과연 팔순의 김종인만큼 현실에 제대로 발을 딛고 고민하는지, 보수 유권자들에게 정권 창출을 위한 실질적인 희망을 주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스타일리스트’라는 지적을 들었던 한나라당 시절처럼 말로만 개혁과 혁신을 외쳤다간 유권자들은 좋든 싫든 당분간 ‘김종인 대망론’을 듣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