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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청와대보다 잘 지어야 하는 이유[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

입력 | 2020-09-09 03:00:00

〈34〉 보스턴 공공 도서관




보스턴 공공 도서관 로비. 두 사자상이 있고, 벽화가 있다. 사자상은 남북전쟁에 자진 참전한 보스턴 젊은이들을 기억한다. 벽화는 왼쪽부터 천문학, 역사학, 화학을 상징한다. 로비 벽면과 사자상 재료는 시에나 대리석이다.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가을이다. 책들의 도시 도서관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미국을 대표하는 공공 도서관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역시 보스턴 공공 도서관(Boston Public Library)이다. 건축가는 찰스 매킴이다. 보스턴 도서관은 보스턴의 ‘명동’ 격인 코플리 스퀘어에 있다. 이곳에는 도서관 말고도 보스턴 건축 문화재인 트리니티 교회(1877년 준공·건축가 헨리 리처드슨)가 있다.

보스턴은 미국을 대표하는 아크로폴리스로 성장했다. 1870∼1900년 사이 터프츠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보스턴 칼리지, 보스턴대, 노스이스턴대, 웰즐리대,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 등 많은 대학들이 보스턴에 새로이 섰고, 하버드대는 대대적인 증축을 단행했다. 당시 보스턴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이자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였다. 보스턴 도서관은 그런 보스턴의 부상을 대표하는 지식의 파르테논이자 판테온이었다.

보스턴 도서관은 외관과 중정과 리딩룸도 좋지만, 그중에서도 로비가 빼어나다. 매킴은 로비 계단실에 부착할 대리석으로 금색 노란 빛깔이 도는 ‘몬테 리테(Monte Riete)’를 지정했다. 이 이탈리아 대리석은 수도원 소유의 채석장에서 고식(古式) 채굴법으로만 생산이 가능했다.

매킴은 시에나 대리석을 실제 공사에 필요한 양보다 10배나 많이 주문했다. 로비 벽에 부착할 대리석 판은 위로 갈수록 미묘하게 어두워져야 했고, 또 완벽에 가까운 문양과 질감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물량을 세심히 골라 나머지는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로비 대리석 벽면은 계단을 오를수록 어두워진다. 방문자의 눈은 대리석 질감에 집중하고 사자상과 벽화로 눈이 이동한다. 로비에서 리딩룸으로 내려가면 어둠이 밝음으로 반전한다. 어찌 보면 로비는 리딩룸을 준비하는 예비 공간이자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변두리 공간인데 매킴은 이곳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버리는 코너에서 매킴의 정신이 오롯이 돋아난다.

2개의 보스턴 도서관 로비 사자상은 미국 조각가 루이스 세인트고든스가, 8개의 벽화는 프랑스 화가 피에르 퓌비 드샤반이 만들었다. 매킴은 드샤반에게 대리석 샘플을 보냈다. 72세 거장 화가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기보다 부드러운 톤이 배어나게 배려했다. 이 밖에도 보스턴 도서관은 많은 아티스트들의 협업의 산물이다.

매킴은 도서관을 짓기 바로 직전에 아내를 잃었다. 그들은 신혼부부였다. 줄리아는 키가 크고 아름답고 똑똑한 ‘보스턴 브라민(보스턴 귀족가문)’ 사람이었다. 줄리아는 출산 중에 사망했다. 매킴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보스턴 마운트 어번 공공 묘지에 묻었다. 매킴은 줄리아 사망 후 그 어떤 여인과도 다시는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도서관 로비는 매킴이 이런 개인적인 비통한 시간을 통과하는 가운데 탄생한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건물뿐만 아니라, 불멸의 건축정신과 건축을 대하는 자세를 세상에 선보인다.

보스턴 도서관은 공공 도서관의 품위와 격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또 도서관을 왜 청와대보다 더 잘 지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21세기 우리 공공 도서관은 19세기 보스턴 도서관보다 더 격조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느 날 우리도 우리 도시를 향해 에머슨이 자기 고향 도시 보스턴을 향해 말했던 것처럼 말할 수 있으리라.

“보스턴(서울)은 우연이 아니다. 술집도 역사(驛舍)도 풍차도 아니다. 그렇다고 군 요새가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 혹은 요행을 잡아, 풍요로운 도시가 된 것이 아니다. 보스턴(서울)은 지식과 원칙의 기준점이며, 정서에 순종하고, 감정의 향방을 충실히 걸었을 뿐이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