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 ‘강진여성인물사’ 발간
독립운동가 박영옥, 양노린 수녀 등 강진 출신 여성 10명의 삶 담아

강진군은 조선시대 사의재 주모에서부터 근세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등 강진 출신 여성 10인의 삶을 강진문화원과 함께 책으로 펴냈다. 책에는 사의재 주모와 박영옥을 비롯해 인간문화재 함동정월, 양노린 수녀, 김감순, 김영례, 오승례, 조덕희, 신순덕, 이물 등 10명의 삶이 담겨 있다. 이들은 모두 고인이 됐다.
1801년 11월 추운 겨울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강진으로 유배를 왔을 때 가장 먼저 받아 준 사람은 강진읍 동문 앞 주막의 주모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뜨끈한 아욱국으로 밥상을 차려줬고 방 한 칸을 흔쾌히 내주었다. 지금의 강진읍 동성리 사의재가 그 자리다.
‘나는 뜻밖의 일로 크게 깨닫고 경계하며 깨우쳐서 주인집 할머니를 공경하게 됐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미묘한 위치가 바로 밥을 팔면서 세상을 살아온 주인집 할머니에 의해 겉으로 드러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신기하기가 이를 데 없다.’
박영옥(본명 박삼례)은 1919년 강진읍에서 일어난 4·4 독립만세운동 때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운반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일한 여성으로 23세의 나이였다.
당시 체포된 이들은 장흥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일본인 검사는 박영옥의 은밀한 곳을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며 성 고문에 가까운 질문을 했다. 그러자 박영옥이 “거기가 네가 나온 곳이다”라고 대들었다.
검사가 “만세운동을 어떻게 계획했는가”라고 묻자 박영옥은 “독립만세운동은 내 나라 내 민족의 일인데 너희에게 자백할 이유가 없다. 부모 잃은 자식이 부모를 찾는 것이 당연하듯 조국 잃은 내가 조국을 찾겠다는데 무슨 죄냐”며 당당하게 맞섰다. 박영옥의 용기 있는 행동을 두고 남정네들이 바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알 달린 놈이 강진 남포의 박영옥만도 못하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김감순은 김창식 전 전남지사의 어머니다. 항식·창식·용식 삼형제가 국가고시에 합격해 현모(賢母)의 모범이 됐다.
김영례는 광복 후 강진의 여성운동을 주도한 신여성이었다. 전북 익산 출신이지만 23세에 강진으로 시집와 농촌에서 생소했던 여성운동을 뿌리내리게 했다.
기업을 일으키는 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역할을 한 강진 출신 대기업 회장 부인들도 다뤘다. 오승례는 국내 최초로 반도체를 생산했던 아남그룹(현 엠코코리아) 창업자 김향수 회장의 부인이며 조덕희는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의 부인이다.
신순덕과 이물은 강진의 상업 역사를 보여주는 여성들이다. 신순덕은 일제강점기 병영과 만주를 오가며 장사를 했던 병영상인이었고, 이물은 강진 주변 오일시장을 주름잡았던 보부상이었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양성평등이 강조되는 시대에 출간된 강진여성인물사는 강진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작업의 출발점이자 앞으로 여성정책에 보다 더 힘쓰겠다는 다짐”이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