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우드워드의 신작 ‘격노(Rage)’ 출간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고받은 27통의 서신이 일부 공개됐다. 김정은의 편지는 손이 오그라드는 표현이 가득하다. “우리가 나눈 매 순간순간이 소중한 추억이다. 특별한 우정이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재차 만남을 요청했다. 트럼프도 화답했다. 둘의 사진이 실린 신문 1면을 동봉하고 이틀 뒤 회동 사진 22장을 또 보내며 “우리의 독특한 우정을 담았다”고 썼다.
▷김정은은 ‘밀당(밀고 당기기)’도 적절히 구사했다. 작년 판문점 회동 이후 한미 군사훈련이 완전히 중단되지 않은 것에는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런 솔직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우정이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며 트럼프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다. 우드워드는 이를 ‘실망한 애인의 어조’라고 묘사했다.
▷김여정은 두 달 전 이례적인 담화를 냈다. 김정은의 허락을 받았다며 “미국 독립절 기념행사 DVD를 꼭 얻으려 한다”고 했다. 끊긴 정상 간 소통을 복원해 보자는 기대였을 것이고, 그 사이 은밀한 편지가 오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는 “나는 상대가 거칠고 비열할수록 잘 지낸다”며 독재자를 잘 다룬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과의 기이한 브로맨스는 틀어지면 엄청난 위험을 낳을 수 있다. 연애의 끝이 결별을 넘어 원수지간이 되듯.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