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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직원에게 맡겼더니 대박 났어요”

입력 | 2020-09-12 03:00:00

◇규칙 없음/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지음·이경남 옮김/468쪽·2만5000원·RHK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오른쪽)와 에린 마이어 인시아드 교수. 두 사람은 같이 쓴 ‘규칙 없음’에서 넷플릭스 같은 혁신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높은 인재 밀도, 혁신이라는 목표, 느슨하게 결합된 시스템, 상하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Austin

2017년 1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프로그래밍 디렉터인 애덤은 선댄스영화제에서 러시아 도핑 스캔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카루스’를 봤다. 걸작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치고 비싼 250만 달러를 입찰가로 생각했다. 하지만 경쟁사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어 400만 달러는 돼야 할 것 같다. 최고콘텐츠책임자(CCO)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결정을 하라고 당신한테 월급을 주는 겁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월척이라면 450만이든, 500만이든 잡아야죠.” 애덤은 460만 달러로 결정했다. 이카루스는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넷플릭스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세계적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에린 마이어 교수와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에 관해 지난해 함께 쓴 ‘규칙 없음’에는 애덤 같은 실무자(책에서는 ‘정보에 밝은 주장·informed captain’이라고 표현)가 홀로 큰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적지 않게 들어있다. 저자들은 ‘직원 결정을 승인하거나 거부하기 위해 존재하는 상사는 혁신을 막고 성장을 더디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단언한다.

올 4월 기준 전 세계 유료 구독자 1억9300만 명을 보유한 굴지의 콘텐츠 기업 넷플릭스에는 이처럼 대부분의 회사에는 당연히 있는 것이 많이 없다. 휴가 규정, 비용 규정, 출장 규정, 승인 절차, 의사결정 승인, 핵심성과지표, 성과 향상 계획, 성과급….

얼핏 직원 마음대로인 것 같은 이런 방식은 자유와 책임의 문화다. 헤이스팅스는 지난 300년간 기업은 대량생산과 낮은 오류비율을 위해 중앙 집중적인 통제, 규정, 정책, 의사결정을 통한 규정과 절차 문화 속에 움직였다고 본다. 지휘자가 악보를 바탕으로 단원들을 한 음, 한 박자 흐트러짐 없이 이끄는 교향악처럼. 그러나 이는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성격과 목표가 오류 방지가 아니라 혁신인 산업은 그런 통제 절차와 규정은 거의 없고, 의사결정권은 철저히 분산돼 있으며 직원 각자에게 많은 자유를 주고 각 부서가 유연하게 운신한다. 그래야 예측 못 한 기회가 생기고 사업 조건이 변할 때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민첩성이 극대화한다. 연주자 각자의 즉흥연주가 놀라운 화음을 이루는 재즈같이.

여기에는 선결조건이 있다. 인재 밀도가 높아야 한다. 넷플릭스의 인력관리 원칙은 이렇다. ‘적당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두둑한 퇴직금을 주고 내보낸다.’ ‘대단한(great)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좋은(good) 직원을 해고한다.’ 창의력이 생명인 분야에서 뛰어난 직원 1명은 평범한 직원 10명보다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분명 조직을 이끄는 방식에 관한 책이지만 읽고 나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한편 무시무시하면서도 변화할, 또는 바뀌어야 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희열이 조금씩 밀려온다. 원제 ‘No Rules Rules’.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