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하다 보면 윤리적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한가,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우선인가, 혹은 대의를 위해 소의는 희생해도 되나, 이런 것들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는 1978년 미국에서 거센 언론 윤리 논쟁을 일으켰다. 독자들은 ‘위험한 낙태 시술을 받도록 보고만 있었느냐’며 성토했고, 기자는 ‘보도 이후 제도 개선으로 구제된 잠재적 피해자들이 훨씬 많다’고 해명했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77)이 신간 ‘격노(Rage)’를 쓰면서 취재 윤리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책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 2월 코로나19의 치명성을 일찌감치 알고도 은폐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폭로했는데 “그럼 당신은 왜 이제야 그 사실을 알리느냐”는 역풍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내 말이 그렇게 위험했다면 왜 즉시 보도하지 않았느냐”며 조롱했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20만 명에 육박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함께 보도했던 칼 번스타인은 트럼프의 코로나 위험성 뭉개기는 ‘죽음을 부른 직무유기’라고 했다. 우드워드라도 트럼프 발언을 설익은 상태에서나마 보도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자격 없는 리더가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사명감에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앞서 소개한 불법 낙태시술 보도는 퓰리처상을 받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은 대의를 위한 보도라도 진료기록을 불법 복사하거나 단 한 명의 희생이라도 감수할 권리는 없다고 밝혔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