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코로나 회복 후에도 끝나지 않는 고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아도 심신의 후유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완치자 중 3분의 1이 후유증을 겪는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미국 시애틀의 한 고교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가 진행되는 모습. 시애틀=AP 뉴시스
체념이라는 표현과 달리 40대 여성 김모 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말투에선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배어나왔다. 김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 해제자’다. 올 3월 10일 확진 판정을 받고 40일간 치료 끝에 완치돼 퇴원했다. 몸속 바이러스는 이제 사라졌다. 그 대신 그는 코로나19 ‘유령’과 싸우고 있다. 바로 고통스러운 후유증이다.
퇴원 후 그는 매일같이 심한 가슴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전에는 없던 증상이다. 그래서 김 씨는 지하철 이용을 피한다. 공기가 나쁜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 양쪽 폐가 송곳에 찔리는 듯한 고통이다. 두려운 건 이런 통증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이들에겐 후유증 치료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코로나19 진단검사비와 입원치료비는 모두 국가가 지원한다. 하지만 완치 후 후유증 치료비는 지원하지 않는다. 진단검사비와 입원치료비를 지원하는 것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후유증 치료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해외에선 코로나19 완치자들이 겪는 후유증에 관한 조사 결과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완치자 143명을 조사했는데 90% 가까이가 최소 한 가지 이상의 후유증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치자의 3분의 1가량은 불안감, 절망감, 수면장애 등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 완치가 끝이 아니었다
김 씨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한 직후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매일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손에 쥐여졌다. 코로나19에 감염되기 전엔 이런 일이 없었다. 퇴원 후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탈모 증상은 6월까지 이어졌다. 미국 영화배우 얼리사 밀라노도 지난달 자신의 SNS를 통해 심한 탈모 증세를 알렸다. 머리를 빗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밀라노는 4월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김종해 씨(76·여)는 코로나19를 앓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오른쪽 무릎 관절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할 때마다 뼈마디가 서로 부딪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퇴원 후 두 달간은 어지럼증도 심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이 바닥에 제대로 닿지 않고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브레인 포그’ 증상도 코로나19 후유증의 한 사례로 보고되고 있다.
○ 미각, 후각 사라지고 기억력도 떨어져
올 3월 라면을 먹던 B 씨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처럼 끓인 라면인데 맛이 달랐다. 정확히는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고 밍밍했다. 코가 살짝 막혀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식사로 빵과 아보카도를 먹는데도 맛을 느끼지 못했다. 냄새도 맡지 못했다. 전날 막혔던 코는 뚫려 있었다.
3월 27일 확진 판정을 받은 신모 씨(28·여)도 입원 후 미각과 후각을 모두 잃었다. 미각은 2주일쯤 지난 뒤부터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후각은 다섯 달 이상 지난 이달 3일에야 되찾았다. 신 씨는 의사가 “이제는 후각도 거의 정상적인 수준을 회복했다”고 말하기 직전까지 자신이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는 상태라는 걸 몰랐다고 한다. 신 씨는 기억력과 집중력도 떨어졌다. 휴대전화를 포함해 평소 늘 쓰는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몰라 찾는 일이 잦아졌다.
○ 해외 후유증 연구 활발, 한국도 진행 중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가톨릭대 부속병원이 코로나19 완치자 143명의 건강상태를 조사한 결과 87.4%(125명)가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치자 중 53.1%(복수 응답)는 피로감을 호소했다. 호흡 곤란(43.4%), 관절 통증(27.3%), 가슴 통증(21.7%) 후유증이 뒤를 이었다. 후유증이 없다고 한 완치자는 12.6%에 그쳤다. 코로나19 완치 환자 10명 중 8명 이상은 후유증을 앓는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연구진은 퇴원한 코로나19 환자 86명의 건강상태를 추적 조사한 결과를 지난달 유럽호흡기학회에서 발표했다. 퇴원 후 6주가 지난 환자의 88%는 폐 손상 징후가 계속 나타났다. 47%는 호흡 곤란 증세를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의 경우 방역당국 차원의 코로나19 후유증 조사연구는 진행 중인 단계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퇴원 환자 추적을 통한 후유증 조사와 관련해 국립중앙의료원이 4월부터 연구를 시작해 진행하고 있다”며 “격리 해제자 30명을 대상으로 혈액을 확보하는 등 3개월마다 면역학적 분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할수록 후유증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문제가 불거진 뒤 그때 가서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면 늦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완치자 - 회복자 - 생존자 ::
최근 해외에서는 코로나19 후유증 사례가 이어지자 ‘완치자(cured)’ 대신 ‘회복자(recovered)’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퇴원 후에도 여전히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반영됐다. 비슷한 취지에서 ‘생존자(survivor)’도 종종 쓰인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환자의 퇴원 후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회복자나 회복환자 같은 표현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강동웅 leper@donga.com·김소민·이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