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주의 앞세워 미국에 맞서려는 의도, 40부작 ‘항미원조 전쟁’ 드라마 만들어
중국의 항미원조전쟁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의 포스터. [바이두]
조선전쟁과 항미원조전쟁
중국의 항미원조전쟁을 미화한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넘어'제작 발표회 모습. [바이두]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항미원조전쟁 70주년을 맞은 올해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등 대대적인 선전·선동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 관영 언론 매체들이 앞 다투어 항미원조 전쟁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특집 기사(8월 31일자)를 통해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은 중국 공산당과 인민군대의 혁명 정신을 널리 알린 전쟁이었다”면서 “항미원조 정신은 중국 인민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항미원조 전쟁 카드를 꺼내든 의도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의 신(新)냉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국민들에게 반미정서와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려는 속셈이 있다고 볼 수 있다.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
중국에서 항미원조 전쟁 기념일인 10월 25일 개봉될 영화 \'금강천\'의 한 장면. [신징바오]
이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 위페이(餘飛)는 “이 드라마는 항미원조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미국에 대항하는 중국 인민들의 단결을 강조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6·25 전쟁을 다룬 장편 드라마는 2016년 ‘38선(三八線·38부)’ 이후 4년만이다. 특히 CCTV가 직접 6·25 전쟁을 다룬 드라마 제작에 나선 것은 2000년 이후 20년 만이다. 최소 10억 위안의 제작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되는 이번 드라마는 연말에 방영될 예정이다. CCTV는 이 드라마를 방영한 후에는 해외로 수출, 글로벌 반미 감정 고취에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CCTV는 또 중국이 승리한 전투를 중심으로 항미원조전쟁을 조명하는 6부작 대형 다큐멘터리도 제작해 방영할 계획이다. 중국 관찰자망에 따르면 6·25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 ‘우리의 전쟁’(我們的戰爭)’도 오는 10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항미원조전쟁을 다룬 영화도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장진호 전투를 그린 ‘빙설장진호’(氷雪長津湖)다. 장진호 전투는 6·25전쟁 때 벌어진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까지 진격했던 미국 해병 1만5000명이 영하 30도 이하의 혹한 속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12만 명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작전을 말한다. 당시 전투로 미군을 비롯해 유엔군은 1만7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 중국군 사상자도 4만8000여 명이나 됐다. 미군의 값진 희생 덕분에 북한 치하에서 고통을 겪었던 문재인 대통령 부모 등 10만여 명의 피난민들이 한국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CCTV는 과거 이 영화와 비슷한 제목인 ‘빙혈 장진호(氷血長津湖)’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이 장진호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도 말 그대로 중국이 승리한 전투라는 점을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5억 2000만 위안(885억 원)을 들여 만들고 있는 이 영화는 내년 초 개봉될 예정이다.
애국주의 영화 ‘특수부대 전랑(戰狼)’의 감독이자 주연인 우징(吳京)이 주인공을 맡은 ‘금강천(金剛川)’도 10월 25일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제작비만 4억 위안(682억 원)이 투입된 이 영화는 휴전 직전 금강산 지류인 금강천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작품이다. 중국 영화제작사들은 ‘혈전 상감령’(血戰 上甘嶺) 등처럼 과거에 개봉됐던 항미원조전쟁 영화들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말 그대로 중국 영화계와 방송가에 항미원조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봇물처럼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 행사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또 오는 10월 25일 외국 정상들을 대거 초청해 대대적인 항미원조 전쟁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질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 행사에 김정은이 참석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반미민족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를 대대적으로 만들어 선전·선동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인 사실로 볼 때 항미원조전쟁은 처절한 패배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참전은 유엔 안보리 결의와 국제법 등을 무시하고 북한의 침략전쟁을 도와준 것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잃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발표한 전체 사상자는 30만여 명이지만 실제로는 100만여 명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이 투입한 병력은 이른바 ‘윤전(輪戰)’ 방식으로 연인원 240만여 명이나 됐으며 비전투 요원 50만여 명까지 모두 290만여 명이나 됐다. 이들 중 세 명에 한 명꼴로 죽거나 다치는 등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의도는 이런 ‘역사적 교훈’을 외면한 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워 미국의 공세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아무튼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미국에 맞서 ‘제2의 항미원조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은 엄청난 오판이 될 것이 분명하다.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57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