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군사정권 시절이 끝나고 IMF 구제금융 시절 사이에 대학 생활을 했던 우리 세대는 사회가 설정해 놓은 개개인의 능력이나 특정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들의 평가 기준에 대한 공정성을 의심하는 정도가 지금만큼 심했던 것 같지 않다. 그저 언제 시험이 있을 것이고 모두 이를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이러한 인식이 옳고 그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개인의 능력이나 의견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사회적 기회를 배분해야 한다는 생각을 ‘능력주의(meritocracy)’라고 부른다. 순수한 장점만을 평가한다는 의미에서 장점을 의미하는 ‘merit’라는 영어 단어에서 기원했다. 사회 구성원이 ‘장점’의 기준에 공감하는지에 따라 능력주의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의하는 절대적 장점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의 한계에서 오는 아집의 함정에서 어떻게 벗어나 건전한 토의를 할 수 있을까? 올해 미 대선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30대 초반이었던 1970년대 초반부터 미 연방 상원의원으로 오랜 정치 생활을 해왔다. 그는 처음 의정 생활을 할 때 당시 선배 의원이 해주었던 조언, ‘상대 의원 의견의 실질적인 장단점만 평가하고 그 의원이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지 말아라’를 늘 기억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공화당의 원로 상원의원이자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바이든의 상대편 대선 후보였던 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토론 속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지금까지 바이든이 한 번도 남의 의견을 감정적으로 받아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2016년 회고했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토론의 정석을 어떻게 환경 문제에 적용할 수 있을까? 태양광 패널이 홍수로 산에서 떠내려가고 원료로 쓰인 중금속이 토양과 지하수에 녹아나는 것에 대해 걱정된다면 원자력발전 폐기물 처리에 걱정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의 주장을 한 번쯤 주의 깊게 들었으면 한다. 반대로 원자력발전의 안전에 대해 걱정이 가득하다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장점에 대해 한 번쯤 곱씹어 보자. 환경 문제 해결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다만 사회 구성원 사이의 공감대가 존재할 뿐이다. 공감대가 없는 정답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