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정책 재검토 청원 주도 박윤형 순천향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박윤형 순천향대 의대 교수는 “일본은 1970년대부터 노인 인구가 많은 농어촌 보건지소에 은퇴 의사를 배치해 왔다”며 “우리도 면 단위에 설치된 보건지소 1900곳 중 일부는 매년 700명가량 나오는 은퇴 의사들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그 대신 젊은 공중보건의는 지역의사와 역학조사관으로 일하게 하자는 것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진영 논설위원
“의사 수 증가=의료비 증가인데 국민들에게 사전 동의 얻었나”
―정부는 10년간 의대 입학정원을 4000명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근거로 의사 수 부족 문제를 들었다.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4명)의 7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인구 10만 명당 의대 정원은 7.48명으로 미국(7.95명) 일본(7.14명)과 차이가 크지 않다. 1인당 연간 병원 방문 횟수(16.6회)는 OECD 회원국(평균 7.1회) 중 최고 수준이고 국토 면적당 의사 수, 예방접종률, 건강검진율 등 의료 접근성을 나타내는 지표와 위암 유방암 대장암 등 중증질환 생존율이 모두 OECD 평균보다 높다. 반면 1인당 연간 진료비(3192달러)는 OECD 평균(3992달러)보다 싸다. 결론적으로 의사는 부족하지 않으며 가성비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의사의 진료 시간을 15분, 30분으로 늘리기를 원한다면 의사를 증원하는 것이 맞다. 그 대신 의료비도 증가한다. 국민들이 돈을 더 낼 테니 진료 시간을 늘려 달라고 하는 것인가. 적정 의사 숫자를 계산하기 전에 여론 수렴부터 했어야 했다.”
―오래 진료받고 싶은 사람은 추가 비용을 내게 하면 되지 않나.
“현행 의료수가 체계상 진료비는 1인당 기준으로 정해져 있다. 1분이든, 한 시간이든 진료비가 같다.”
―지방은 의사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방엔 환자가 적다. 병원들이 제대로 월급을 줄 수 없어 의사를 못 구하는 것이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지역의사제는 싼값에 일할 의사가 필요하니 학비를 면제해주는 대신 10년간 강제로 쓸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그 의사가 성심껏 환자를 돌볼까.”
“이국종 교수처럼 위험하고 힘든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도록 의료수가 개혁이 필요하다. 쌍꺼풀 수술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가격이긴 하지만 100만 원인데 미숙아 괴사성 장염 수술은 50만 원이다. 의료수가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의사가 더 필요한 것 아닌가.
“노인 관련 수요는 증가하지만 전체 의료 수요는 감소하고 있다. 예전엔 밤늦게까지 죽기 살기로 일하고 술 담배도 많이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마라톤 붐이 일고 몸 관리를 하면서 병원 방문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건강보험 적립금이 20조 원 넘게 쌓인 건데 그걸 떨어 먹은 게 ‘문재인 케어’다(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 문재인 케어 시행 첫해인 2018년 건강보험 재정은 8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고, 2024년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대 신설? 부속병원 짓는 데만 1000억원인데 예산 얘기는 없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의대 정원을 10% 줄여 지금의 3058명이 됐다. 당시 정부는 인구 10만 명당 의대 정원이 6.9명으로 미국(6.5명) 일본(6.1명)보다 많아 정원을 줄이지 않으면 보험료가 오르고 의학교육이 부실해질 것이라고 했다. 사실은 의약분업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것 아니었나.
―서남대는 설립자의 비리와 부실한 학사관리 때문에 폐교된 것 아닌가.
“서남대는 폐교 이전에 의대가 정부의 의학인증평가에서 탈락해 학생들이 국가고시를 볼 수 없게 됐다. 의대는 부속병원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임상 교육을 할 교수도, 실습 장소도 없기 때문이다. 당시 병원 없이 신설된 의대가 강원대 제주대 서남대 세 곳이었다. 강원과 제주는 도립병원을 빌려 썼다. 두 학교는 국립이어서 살아남았지만 서남대는 짓는 데만 1000억 원이 드는 대학병원을 엄두도 못 냈다.”
―정부는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공공의대를 신설하기로 하고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을 보면 서남대 의대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남원 시민들은 부속병원까지 지어 달라고 하지만 법안엔 국립중앙의료원과 남원의료원 등을 교육병원으로 쓰도록 돼 있다. 또 의학전문대학원 형태로 설립한다고 돼 있어 입학 후 임상 교육을 하려면 학생들은 남원에서 입학만 하고 서울의 국립중앙의료원 등으로 가게 된다.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재정 지원도 강제 조항이 아닌 임의 조항이다. 남원시 인구가 8만 명이다. 남원의료원도 환자가 없어 허덕이는데 기획재정부가 예산 지원을 하려 할까. 지금 서남대 의대 출신들은 어디 가서 서남대 출신이란 말도 못 한다. 정치적으로 어설프게 지어 놓았다가 또 그런 피해자만 양산하게 된다.”
―공공의대 졸업생들의 의무 복무 규정에 대해 개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있다.
“지금도 전액 장학금을 주는 대신 5년간 국가가 지정한 곳에서 일하게 하는 공중보건장학제도가 있다. 20명 정원에 8명만 지원할 정도로 인기가 없다. 대개는 지방의료원에 배치되는데 병원장들이 월급 적게 주며 부려먹으려 해 의사들은 ‘의노(醫奴)’라 자조한다. 그런데 공공의대는 의무 복무 기간이 10년이다. 쉽게 입학시켜 준다고 하면 가겠지만 장학금 준다고 가진 않는다.”
“공공의료한다면서 코로나 뒷바라지로 거덜 난 지역의료원은 외면”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고려해볼 만하진 않을까.
“한다면 사관학교나 경찰대처럼 국립으로 충분히 투자해 질 높은 교육을 해야 한다. 의사 면허 취득 후엔 국가공무원법에 의한 의무사무관으로 임명해 공공의료 중 전공자가 거의 없는 결핵 나병 말라리아 급성전염병 백신연구 등을 전공하게 하고 국립병원 보건소 질병관리청 같은 국가기관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다. 이종욱 박사 같은 국제적인 전문가도 양성해야 한다. 10년간 시간 때우고 가라는 식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자기 발전의 기회를 줘야 한다.”
―우리 공공의료 수준은 어떤가.
“우리나라만큼 훌륭한 공중보건의료체계를 갖춘 나라가 없다. 6·25전쟁 무렵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 지원으로 외국 의사들이 봉사하러 오면서 보건진료소가 생겨났다. 이후 이승만 정부가 보건소법을 제정해 그걸 물려받아 운영했고 박정희 정부 때 전국으로 확대했으며 1990년대 초반에 정비가 완료됐다. 전국 모든 시군구에 보건소가 설치돼 의사 1000명과 간호사 5000명이 근무하고 있다. 면 단위 보건지소 1900개엔 공중보건의가 1명씩 배치돼 있고 리 단위 보건진료소 1800개엔 보건진료원(간호사)이 상주한다. 보건소 시스템은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수출도 한다. ‘K방역’은 이런 기반 덕분에 가능했다.”
―K방역엔 보건소뿐만 아니라 민간 병원의 기여도 컸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경영난을 겪는 병원들이 많다.
“민간 병원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할 수 있지만 전국의 34개 지방의료원(도립병원)은 아무 소리도 못 한다. 정부는 필요할 땐 마음껏 부려먹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일반 환자 모두 내보내고 코로나 환자 받으라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지금은 일반 환자가 오지 않아 월급도 못 주는 의료원들이 있다. 공공의료기관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면서 무슨 공공의료를 외치나.”
―정부와 의료계가 공공의료정책을 원점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의정 간 신뢰가 없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통령 직속 의료발전특별위원회를 만들어 6개월간 치열한 논의 끝에 결론을 냈다. 신뢰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의사 파업으로 많은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국공립병원 의사들의 파업이라도 막을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책 발표 전 토론회를 열어 의견 개진이라도 하게 했더라면 파업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었다. 의사는 파업하면 자기 손해다. 개원의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 정부는 손해 본 것 있나. 이 난리를 쳤는데 장관도 국회의원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박윤형 교수::경희대 의대 졸업. 경기도립의료원 초대 원장, 보건복지부 규제심사위원장, 한국보건행정학회장 등을 역임해 현장과 정책 및 이론에 두루 밝은 공공의료 전문가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대통령직속 의료발전특별위원회 의료제도분과위원장을 맡았고, 지금은 세계보건기구(WHO) 협력센터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