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평양에서 발생한 ‘문수원 사건’에 휘말려 평안남도 오지의 농장에 추방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여배우 리설희.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문수원은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목욕탕, 사우나, 미용실 등이 구비된 유명 종합편의시설이다. 평양의 대표적 대중목욕탕인 창광원과 비슷한 시기인 1982년에 건설됐다. 보통강 구역에 창광원이 있고, 대동강 건너편 주민을 위해 동대원 구역에 문수원을 건설했다. 평양산원 정문에서 약 200m 거리이고, 현재 평양종합병원을 짓는 곳에선 도보로 약 15분 거리다.
북한의 대형 대중목욕탕들에는 보통 사우나 시설이 설치된 ‘비밀의 방’들이 존재한다. 이곳에서는 권력자와 부자들이 단골로 찾아와 마약과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엉뚱한 사건은 평북 철산에서 벌어졌다. 이곳에 있는 한 외화벌이 조개양식기지의 젊은 책임자가 연쇄 살인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말이 기지이지 사실상 개인 회사처럼 운영됐는데, 책임자는 일찍이 아버지에게서 기지를 물려받아 흥청거리며 살았다고 한다. 북한판 재벌 2세에 비유할 수 있다.
북한에서 돈 좀 있는 사람이라면 마약을 대부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책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기지 안 여성들은 물론 외부 여성들까지 데려와 마약과 성매매를 했다. 이 정도 일은 북한에서 비일비재한 것이라 뇌물을 정기적으로 상납하면 걸릴 일도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문제는 그가 뱃놀이를 한다면서 자주 여성들과 배를 타고 나가 놀았는데, 말을 듣지 않는 여성은 죽여서 바다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북한에선 그가 이런 식으로 죽인 여성이 30명이 넘는다는 소문이 났다. 폐쇄회로(CC)TV가 없고, 젊은 여성이 사라지면 탈북했다고 믿는 북한 실정에서 능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흔적을 없애느라 수장한 여성의 시신이 떠올라 발견됐다. 그 바람에 책임자의 경악할 만한 범죄가 드러나게 됐다. 취조 과정에서 그가 평양에도 수시로 가서 문수원에서 즐겼다는 진술이 나왔다.
조사 결과 문수원을 즐겨 찾은 간부들 명단까지 줄줄이 나왔다. 문수원에서 직원으로 채용한 젊은 여성 접대원은 물론 인근 대학 여대생들까지 성매매에 가담한 사실마저 드러났다.
문수원 인근에는 평양음악무용대학과 평양연극영화대학이 있는데, 이곳엔 전국에서 뽑아온 미모의 여대생들이 많다. 지방에서 올라온 여학생들 중 일부는 돈이 없어 성매매를 하거나 부유층의 숨겨진 애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정은의 지시로 책임자와 성매매업자 등 주범 6명이 처형됐다고 한다. 이 중에는 문수원에서 마담 역할을 했던 여성도 있는데, 그는 유명 여배우인 리설희 남편의 숨겨진 애인이었다. 리설희는 북한이 자랑하는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손으로 가슴을 가리긴 했지만 북한 영화에서 보기 드문 목욕신과 베드신까지 찍어 화제가 됐던 배우다.
문수원 사건으로 리설희도 남편과 함께 추방됐다. 추방된 사람들은 높고 가파른 산에 앞뒤로 막혀 해가 오후 4시에 진다고 알려진 양덕과 맹산의 오지에 끌려가 농사를 짓게 했다. 떵떵거리며 살던 수많은 권력자와 부유층이 하루아침에 몰락한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