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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거부’라는 자가당착[현장에서/박상준]

입력 | 2020-09-17 03:00:00


자녀 입시비리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재판을 받기 위해 7월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박상준 사회부 기자

“증인은 딸의 서울대 인턴 증명서 발급에 개입한 것이 전혀 없나요?”

이달 3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검사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물었다. 조 전 장관이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자리였다. 조 전 장관이 그동안 해 왔던 주장을 고려하면 이 질문은 그간의 의혹에 대해 소명할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딸의 서울대 허위 인턴 의혹 관련 질의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서울대 인턴십 관련 서류를 제가 만들었다는 보도는 정말 악의적”이라며 “정말 참기가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올해 부인 정 교수의 재판에서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 증거가 연이어 나왔다. 조 전 장관이 2008년 10월 딸에게 “내가 내년 상반기에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할 것인데, 여기서 인턴십 활동을 하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쓴 e메일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조 전 장관의 서울대 법대 연구실 PC에서 딸의 인턴십 증명서 파일이 발견됐다는 사실도 나왔다.

자신의 주장과 정반대의 증거들이 나왔다면 재판부에 경위를 설명하고 사실을 바로잡는 게 상식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그 기회를 애써 밀어냈다. “딸 인턴 증명서 발급에 개입한 적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조 전 장관은 “형사소송법 148조에 따르겠다”며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검찰에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는 “법정에서 밝히겠다”며 진술을 거부했었다. 15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부인 정 교수와 아들 역시 뒤를 이어 소명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는 길을 택했다.

법정에서 증언을 했다가 자신이나 친족이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염려가 있을 때 증언을 거부하는 것은 법에 보장된 권리다. 조 전 장관의 가족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의 선택은 그가 진보 성향 법학자로서, 사법개혁에 앞장선 전 민정수석으로서 표방해 온 가치와 거리가 멀다. 조 전 장관은 여러 논문에서 공판중심주의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는 곳은 법정이라고 강조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8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기되는 의혹은) 실체적 진실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 대표 앞에서 소상히 밝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인 정 교수의 재판부가 지난달 조 전 장관을 증인으로 채택하며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서”라고 설명했을 때 공판중심주의의 철학을 누구보다 지지해 온 조 전 장관도 재판부의 결정을 이해했을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부당하다고 호소하며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고 주장해왔다. 그랬던 그의 증언 거부는 ‘진실의 시간’을 기다려온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줬다.

박상준 사회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