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박세연 옮김/352쪽·1만6800원·어크로스
“상황이 정말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두렵다. 민주주의는 사실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였다. 냉전 이후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붕괴는 군인이 아닌 선출된 지도자의 손으로 이뤄졌다. 선출된 독재자는 민주주의의 틀을 보존하고 내용물을 갉아먹는다. 구성원들은 그럼에도 자신들이 여전히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저자들은 현대의 수많은 독재정권이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구축됐음을 지적한다. 독재자들이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하고, 부패를 척결하고, 선거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민주주의를 변형시킨다는 얘기다.
이 책은 독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편향적으로 해석되고 인용될 소지가 있다. 여러 국가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몰락 사태를 되짚으면서 거듭 강조되는 위기의 주요 원인이 ‘당파적 양극화와 분열’임을 새기며 읽는 편이 좋다. 저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미국 민주주의 규범의 침식이 트럼프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헌법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은 굳건하다. 하지만 모순되게 해석돼 반민주적 지도자에 의해 악용될 위험이 있는 헌법은 민주주의의 보호 장치로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것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다.”
관용은 상대 정당을 적이 아닌 경쟁자로 인정하는 태도다. 제도적 자제는 시한부로 주어진 제도적 권력을 당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용하고 싶어지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태도다. 정치적 대립의 상대를 적으로 간주할 때, 위정자가 제도적 특권을 남용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할 때, 그런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비통한 죽음을 맞았다.
저자들은 “예의와 협력이 사라진 미국 정치권이 관용과 자제의 불문율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유보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양극화와 분열을 해결하지 못하면 민주주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들의 경고를 ‘미국 이야기’라고 가볍게 읽어 넘길 수 있을까.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 가장 빠른 길은, 그 존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