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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월급 두달치 요구에 ‘악’… 중개업자와 줄다리기도 지쳐

입력 | 2020-09-19 03:00:00

[중개수수료 전쟁]갈수록 커지는 소비자 불만




고1, 중2인 자녀를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한 최모 씨(48)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매매는 꿈도 못 꾸고 전세를 알아봤는데,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 두어 달 동안 중개업소를 들락날락한 끝에 전용면적 85m² 아파트 전세가 11억 원에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갔다. 중개업소 사장은 중개 수수료를 880만 원 달라고 했다. 임대 계약에 적용되는 중개 수수료 상한율(0.8%)을 적용하겠다는 것. 그는 “외벌이인 남편 월급의 두 배로 만만치 않지만 ‘강남 입성비’인데 어쩌겠느냐”고 한숨쉬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둘러싼 소비자들의 불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집값이 급등하니 수수료 부담 역시 늘어났다. 여기에 수수료에는 상한요율이 정해져 있을 뿐 구체적인 금액은 중개업소와 고객 간 협의로 정하게 되어 있어 계약 과정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매매값, 전셋값 급등하니 중개료도 급등

중개 수수료 부담이 커지는 것은 집값에 일정 요율을 곱해 수수료를 정하는 특성에 따른 것이다. 매매 가격이 9억 원 이상일 때 수수료율 0.9%를 적용하고 임대 가격이 6억 원 이상일 때에는 0.8%를 적용한다. 모두 수수료 상한액은 없다.

최근 서울 송파구의 소형 아파트를 산 김모 씨(42)는 부동산중개업소에 중개 수수료를 내며 내심 웃었다. 전용면적 27m² 아파트를 9억6000만 원에 사면서 중개 수수료를 600만 원 건넸다. 수수료 상한율(0.9%)을 적용한 금액(약 860만 원)보다 200만 원 넘게 아낀 것. 하지만 입주 후 주민모임에서 수수료를 과도하게 냈다는 걸 알게 됐다. 3년 전 같은 아파트를 산 이웃은 수수료를 260만 원 낸 것. 거래한 중개업소도 같았다. 그는 “아파트 값이 올랐다 해도 중개업소 서비스 자체는 똑같은데 돈을 2배 넘게 더 내서 속상하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에서 자가 아파트에 사는 이모 씨(43)는 최근 서울 목동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고 있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아들 교육을 위해 부천 아파트를 세 주고, 자신은 목동에 전세로 들어가려는 것. 부천 아파트와 목동 아파트 보증금은 각각 4억8000만 원과 5억5000만 원. 임대인과 임차인으로서 전세계약을 두 번 하면 중개 수수료로 400만 원 이상 든다. 그는 “아이가 학교를 마칠 동안 전세 계약이 종료되는 2년 혹은 4년마다 중개 수수료를 매번 낼 생각을 하니 생돈을 날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고무줄 수수료’로 중개업소-거래자 옥신각신

수수료 자체도 부담이지만 중개업소와 거래자가 해당 요율 내에서 ‘협의’를 통해 수수료를 정해야 해 분쟁이 속출하고 있다.

직장인 최모 씨(31)는 올해 5월 송파구의 한 아파트를 매입해 계약서를 쓰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가계약 때 중개업소와 수수료율을 0.5%로 하겠다고 구두 협의했지만 정작 계약서에는 ‘중개 수수료율이 0.9%’라고 쓰여 있었다. 협의를 왜 어기느냐고 따지니 중개업소 사장은 그제야 “실수”라고 실토했다. 계약서를 꼼꼼히 읽지 않았다면 500만 원 넘게 날릴 뻔했다. 그는 “모르고 당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라며 분노했다.

정모 씨(34) 역시 최근 성동구 옥수동의 아파트를 거래하며 중개 수수료율을 0.8%에서 0.4%까지 낮췄다. 중개업소가 “수수료율은 원래 0.8%”라고 해서 다른 중개업소를 찾겠다고 하자 0.4%로 낮춰줬다. 처음 요율로 계약했다면 400만 원 가깝게 손해 볼 뻔했다.


○ “중개 수수료 고정요율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중개업소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하는 시도도 생겨나고 있다. 경기 성남에서 아파트를 장만한 이모 씨(36)는 인터넷 부동산카페에서 매도인을 만났다. 그가 올린 집 내부 사진과 동영상 등을 보고 쪽지를 보낸 후 실제 계약까지 일사천리에 진행했다. 계약 때는 중개업소가 등기부등본으로 기초 권리관계와 계약서 작성을 도와줘, 50만 원을 냈다.

중개업계에서는 수수료율을 협의하게 하지 말고 차라리 상한율을 낮추더라도 고정요율로 정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막무가내로 수수료를 깎으려는 고객들과의 갈등으로 피해가 크다는 것.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손님들이 중개업소는 계약서만 달랑 써주고 매물을 연결해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중개업소는 등기 시 필요한 법무사와 세금 문제를 논의할 세무사를 섭외해주는 등 고객 요구사항을 해결해준다”고 강조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중개 수수료가) 비싸다 혹은 비싸지 않다를 소비자들이 판단하는 근거는 결국 서비스의 질에 달려 있다”며 “중개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한 법적장치 및 제도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순구 soon9@donga.com·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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