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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너무 창피한 ‘文 파라다이스’

입력 | 2020-09-21 03:00:00

쏟아지는 國格 망신 언사들, 로마식 ‘기록말살형’ 처했으면
내 편 네 편 가른 심리적 국경선 속 도덕적으로 든든, 법적으로 안전
경제적으로 따스한 ‘당신들의 천국’




박제균 논설주간

창피하다. 요즘 자주 느끼는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에서 사태로 이어지며 드러나는 문재인 정권의 민낯이 창피하다. 양심 상식 법리의 잣대를 제대로 적용하면 어렵지 않게 정의가 실현될 일들이 진영 간 전쟁으로 비화하고 마는 한국 사회의 수준이, 그래도 내 편이라면 한사코 감싸며 침묵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그리고 이렇게 비정상이 일상화된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광정(匡正)하지 못하는 나의 무딘 펜이 창피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지키기 위해 여권에서 쏟아낸 궤변과 말장난, 집단 이성(理性) 붕괴현상은 이를 비판하기 위해 다시 주워섬기기도 창피한 수준이다. 쏟아지는 야당 의원 비판에도 무너지기는커녕 슬금슬금 웃는 추 장관의 극강 멘털, 와중에도 ‘엄마가 당 대표여서 미안해’라는 닭살 ‘모성(母性) 멘트’를 던지는 그 여유. 같은 나라에 살지만 다른 세상 사람을 보는 듯하다.

보좌관이 청탁 전화를 했는지는 확인하고 싶지 않고, 남편에게는 전화했는지 물어볼 형편이 안 된다는 추 장관이야 원래 그렇다 치자. 국정과 국회를 제 기분과 형편에 따라 농단하는 듯한 언행을 조목조목 논파(論破)하지 못하는 야당 의원들이 참으로 창피하고 실망스럽다. 로마시대에 폭군의 기록을 말살하는 기록말살형이 있었다는데, 추미애 사태를 둘러싸고 나온 수준 이하 언사들을 모조리 기록말살형에 처하고 싶은 기분마저 드는 요즘이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를 거치며 새삼 놀라게 된다. 주인공이나 조연, 응원단들의 멘털이 어찌 그리 한결같이 강한가.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정녕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사람일지는 몰라도 시쳇말로 ‘뇌구조’가 다른 것은 아닌가.

이분들의 뇌구조 그림에는 다른 건 몰라도 굵디굵은 경계선 하나가 떡 하니 쳐져 있는 것 같다. 내 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심리적 국경이다. 이 국경이 상식이나 양심, 도덕이나 실정법까지 초월하는 레드라인이다. 이 국경 안에 있는 내 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국경 너머 네 편에게는 한없이 가혹하다. 그러니 자기편을 향한 비판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라도 국경 너머 적들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똘똘 뭉쳐 막아내는 것이다. 정상적인 비판에 전쟁으로 응전하는 이유다.

이러니 도덕적으로 거리낄 게 없고,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이유도 없다. 멘털이 강할 수밖에 없다. 간혹 양심의 가책으로 비극적 선택을 한 분도 있고 이성에 눈 감은, 숨 막히는 패거리즘에 질려 국경 밖으로 자발적 망명을 한 사람들도 있으나 드문 경우다.

이 국경 내에선 아무리 돌이킬 수 없는 허물이 있어도 국경 너머 적들의 비판이 집중된다는 이유만으로 영웅시되기도 한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를 칭송하며 꽃다발을 보내고, 이에 고무된 비리 당사자가 스스로를 순교자로 착각하는 도착(倒錯) 현상도 벌어진다. 그 대신 추미애 아들의 ‘황제 휴가’ 의혹을 폭로한 당직사병 같은 공익제보자, 특히 국경 내부의 고발자나 비판자에게는 가차 없이 좌표를 찍고 무차별 댓글 폭탄을 퍼부어 초토화시키고 마는 것이다.

이 국경 안에 있는 한 법적으로도 안전하다. 친문 국회의원과 청와대의 비호와 엄호사격은 기본이다. 알아서 기는 검사들과 풀잎보다 먼저 눕는 판사들의 창궐로 편만 잘 먹으면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한 ‘법우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최후의 법정인 대법원이 있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대법원의 파기환송은 다 죽었던 목숨도 살려놓는다.

이렇게 3심까지 질질 끌다 보면 임기를 거의 다 채울 수도 있다. 11월 2심 선고를 앞둔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벌써 임기의 절반을 넘겼다. 고발장 접수 4개월을 넘겨 기소된 윤미향 의원은 또 언제까지 금배지를 달고 있을 건가.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도 끝난 것은 아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보듯,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라며 판결 뒤집기 시도마저 나온다.

‘당신들의 천국’에서 당신들은 도덕적으로 든든하고, 법적으로 안전하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경제공동체’ 같아서 경제적으로도 따스하다. 그토록 ‘장기집권’을 외치는 것도 이렇게 안전하고 따스한 파라다이스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 돌아가는 꼴이 너무 창피하지 않은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