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정치부 차장
‘실세 차관’으로 불리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지난달 취임 뒤 외교부 간부들과 만나 한 얘기라고 한다. 그는 남북관계의 독자노선을 중시하는 ‘자주파’로 불려왔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이던 그가 차관에 임명됐을 때 외교부는 출렁였다. 청와대가 집권 후반기에 최 차관을 보내 군기를 잡으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기자들을 만나서는 “정권 후반기로 가면 동력이 약해지니 그 부분에서 일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오래가겠다고 한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 반 남은 상황에서 차관을 끝까지 해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46세)라 차관 임기를 마친 뒤에도 시간이 많아 남아 있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외교관들과 척지지 않겠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북핵 문제는 청와대 등 현 정부 외교안보 핵심 라인의 마음을 타게 만들고 있다. 11월 미 대선 전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남북대화를 거부한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비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을 시도했으나 정통한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남측 것은 받지 않겠다”는 뜻이 분명하다.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북-미 간 대화의 창이 다시 열릴 수 있다. 북한이 내년 1월 8차 노동당 대회까지 내부를 다진 뒤 어떤 대외전략 기조로 나올지도 변수다. 문제는 시간이다. 내년이면 한국은 차기 대선 국면으로 들어간다. ‘케미스트리’에 기댔다가 하노이에서 실패한 북-미 정상회담의 재판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도 정권 인사들은 북핵, 한반도 문제에서 어떤 식으로든 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남겨야 한다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외교통일안보 부처들에서는 “집권 세력이 북한 문제 해결의 시간표를 1년 반으로 보는 것 아니냐.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인식의 차이들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제는 “대화는 필요하지만 대화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에 양보해도 정교하게 양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처럼 가치가 높은 협상 칩을 헐값에 북한에 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즉흥적 방식에 다시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도 중요하지만 북핵 해결의 계기를 다시 잡으려면 전문성 있는 관료들과 공통분모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그런 호흡은 더 중요하다. 미 대선, 당 대회 뒤 북한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움직일 것이다. 그때 청와대가 길게 보고 진짜 해결을 위한 대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최 차관 같은 개인이 오래가는 것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훨씬 중요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