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여 뒤인 4월 4일 밴 플리트 주니어는 압록강 남쪽으로 비행을 나갔다가 실종됐다. 네 번째 출격이자 첫 단독 비행이었다. 밴 플리트 장군은 얼마 안 돼 “그 정도면 충분하다”며 수색작전을 중단시켰다. 며칠 뒤 부활절에 장군은 한국군 실종 장병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 “벗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육군사관학교와 한국군 육성에 크게 기여해 ‘한국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군은 100세에 눈을 감을 때까지 평생 외아들을 그리워했다.
▷대를 이어 군복무하는 걸 명예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전사한 유력인 자제들이 적지 않다. 본인이 미-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남과 차남은 모두 프랑스 노르망디 미군 묘지에 묻혀 있다. 차남은 1차대전 때 전투기를 조종하다 전사했다. 장남은 전사하진 않았지만 1차대전에 이어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2차대전 때 어뢰정 정장(艇長)으로 복무했고 조종사였던 맏형은 군용기 사고로 숨졌다.
▷실종 후 전사로 처리됐던 밴 플리트 주니어가 실은 비행기 추락 후 북한군 포로로 잡혔다가 중국을 거쳐 소련의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밴 플리트 장군의 외손자가 최근 주로스앤젤레스 한국총영사관이 연 세미나에서 밝혔다. 육군 정보국 참모차장을 지낸 자기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밴 플리트 장군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목숨 걸고 전투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명예로운 가문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고 했다. 걱정을 숨기며 자식을 전장에 내보내고, 자식을 잃고도 눈물을 감추는 부모가 가문의 영예를 완성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