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고민되는 아이 식습관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나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굉장히 작았고 굉장히 예민했다. 몇 살까지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저녁 9시만 되면 울어대서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보지 않고도 시간을 알 정도였다고 한다. 편식도 심했고, 잔병치레도 많았다. 지금은 잘 아프지 않고 못 먹는 음식도 거의 없지만,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나의 반찬은 김이랑 멸치, 생선 정도였다. 그 외에는 절대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상상이 안 될 수도 있지만, 먹는 양도 매우 적어서 키도 작고 말랐었다. 하지만 식사 시간은 늘 즐거웠다.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를 즐겁게 먹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한번은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잘 안 먹으니까 이렇게 감기도 자꾸 걸리지”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웃으시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말했다. “얘가요, 병원이 단골인 걸 보니 나중에 의사가 되려나 봐요.” 나는 병원을 나올 때 굉장히 뿌듯했다. 주변에서 애가 작고 약하다고 할 때도 어머니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남들이 “얘는 얼굴이 왜 이렇게 노래요?” 하면 “이래 봬도 달리기는 엄청 잘해요”라고 말해주셨다. 어머니의 긍정적인 반응이 나의 성장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놓는 이유는 아이를 잘 먹이는 것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들이 많아서다. 잘 먹어야 된다고 하면서, 어떤 것은 독이 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 ‘해독’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먹으라고 해 놓고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고 얘기한다. 많이 먹으면 키가 큰다고 해 놓고, 어떤 것은 먹으면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은 어른들의 개념이다. 아이에게는 큰 혼란만 준다. 아이에게는 ‘먹는 것은 즐거운 것, 잘 먹어야 잘 큰다’ 정도의 메시지만 전달하면 된다.
잘 안 먹는 아이들도 잘 관찰해 보면 뭔가 먹는 것이 있다. 목록을 만들어 보면 의외로 종류가 많다. 흡수장애나 대사질환이 있지 않는 한 뭐든 먹는 것이 있다. 그것 위주로 만들어 주면 된다. 큰 아이라면 원칙을 얘기해 준다. “먹는 것은 중요해.” 이것이 대원칙이다. “네가 뭘 잘 먹는지 한번 보자. 매번 맛있게 먹는 것을 먹어 보자. 엄마가 그것 위주로 요리해 줄게. 특별히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얘기해 봐.” 하면서 귀엽고 예쁜 모양의 음식 사진을 쭉 붙여놓고, 아이에게 그중에서 한번 골라보라고 하는 것도 좋다.
아이가 뚱뚱한 것 같아 걱정될 때 “뚱뚱하면 애들이 안 놀아 줘”라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할 것 없이 키나 살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처럼 듣기 싫은 소리가 없다. 아이들한테는 “잘 먹는 것은 좋은데, 네가 기름기를 너무 많이 먹으니까 그것은 좀 줄이는 것이 좋아. 이런 것은 저런 것으로 바꿔 보자” 정도로 말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과식을 하거나 폭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면, “참을 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거야”라고 얘기해 준다.
식습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단체 생활을 시작하면 남이 하는 것을 보면서 배운다. 무엇보다 지금 부모가 그렇게 몰두하는 먹는 문제는, 성인이 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대부분 잘 먹게 되고, 편식도 고친다. 성인이 되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성격이다. 성격이 나쁘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 그런데 어릴 때 아이와 먹는 것으로 실랑이를 심하게 하면, 아이 성격이 나빠질 수 있다. 먹는 것으로 아이와 실랑이하는 것은 여러모로 손해가 많은 일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