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진격 속도는 훗날 기계화 군단을 앞세운 독일군도 달성하지 못한 속도였다. 독일의 경우 모스크바로 직진하지 않고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우크라이나로 우왕좌왕하느라 모스크바 공격이 늦어졌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모스크바를 향해 확고하게 진격했다고 하더라도 모스크바 입성 시간은 나폴레옹과 비슷했을 것이다.
비극의 시작은 입성 후부터였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러시아가 협상에 나설 줄 알았지만,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전략적 구상이 완벽한 오류였음이 증명되었다. 나폴레옹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거나 인정하지 못했다. 전략을 포기하지도, 전략을 달성할 새로운 전술적 수단도 구상하지 않은 채 모스크바에 죽치고 앉아 협상 사절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35일을 미적댄 끝에 나폴레옹은 실수를 인정하고 철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장군과 러시아군의 추격으로 나폴레옹군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모스크바에 입성했던 병력 중에서 살아 돌아온 병력은 10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나폴레옹이 일주일만 더 일찍 출발했더라도 생존자가 몇 배는 더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마지막 일주일에만 몇만 명이 얼어 죽었다.
나폴레옹도 황제가 되기 전에는 기민하고 정확했었다. 나폴레옹의 패인은 손에 쥔 권력이다. 권력 중독은 마약보다 무섭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