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9·19군사합의에 침묵한 김정은

입력 | 2020-09-23 03:00:00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되고 미국의 B-1B 전폭기가 북한 영공 바로 앞까지 비행하는 등 한반도 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이런 상황은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급반전되고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사진)과 나는 북과 남 8000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 시민 15만 명 앞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남과 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에서 담소하는 장면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불과 2년 전의 일입니다.

2018년 9월 남북 정상은 ‘핵도 전쟁도 없는 한반도’를 약속하며 역사적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 철거,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 공동 유해 발굴 등 9·19 군사합의 사항이 일사천리로 이행됐습니다. 가시적 성과에 국민들의 희망도 점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북한과 미국 정상 간의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 모두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금강산 관광, 남북 철도 연결 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진척되지 못했습니다. 유엔의 대북 제재 속에서 남북 관계를 독자적으로 진전시키기 못했습니다. 이런 답보 상황에 북한은 예민해졌습니다. 급기야 올해 6월 탈북 단체가 주도한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습니다. 남북 화해 협력의 상징과 같은 건물이 연기 속으로 사라진 겁니다.

그러나 희망의 씨앗마저 모두 말라버린 것은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2주년을 맞아 “9·19 남북합의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며 대화 재개 의지를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분단 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북녘 동포들 앞에서 연설했던 감격은 생생하건만 시계가 멈췄다”며 아쉬운 마음을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역사에서 한 번 뿌려진 씨앗은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열매를 맺는 법”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8일 새로 취임한 서욱 국방부 장관도 남북이 약속했던 공동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아 합의 이행을 강조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메시지를 꾸준히 던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묵묵부답입니다. 북한의 공식 반응은 물론 관영 매체들도 잠잠합니다. 북한은 우리 측의 통신선 연락에도 수개월째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현재 수해로 인한 피해 복구와 코로나19 방역 등 현안 해결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 동향을 지켜보며 내년 1월 8차 당 대회 때 발표할 ‘국가 발전 전략’에 담을 내용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꽉 막힌 남북 관계를 뚫어낼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때마침 제75회 유엔총회가 15일(현지 시간) 개막했습니다. 1945년 유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총회가 화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는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다시 대화 제안을 할까요. 한반도의 멈춰선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